6월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날씨는 여름이 되었다. 다행히 습하지는 않아서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오후가 되자 온도는 32도까지 치솟았다. 회사 주변 내천에 산책하는 사람이 현저히 줄었다. 너도나도 한 손에 아이스 커피를 들고 그늘로 대피하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을 받은 아스팔트 온도가 발바닥에 전달되었다.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정면을 봐도 더운 건 매한가지다. 여름은 그렇게 뜨겁게 왔다. 걷다 보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아직 6월인데 이 정도라니 여름이 절정에 다다르면 아마 쪄 죽을 것이다. 덤으로 장마까지 견뎌야 한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재빨리 산책을 마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서 사무실로 피신했다.
작년 여름 더위가 막 시작될 때 검은색 나이키 샌들 하나를 샀다. 그 샌들을 신고 여름을 보냈다. 여름이 끝날 무렵 발등에는 샌들 모양으로 두 줄의 선명한 스트랩 자국이 생겨 있었다. 까맣게 탄 피부와 흰 피부. 둘 사이의 명백한 경계라인. 여름이 만들어낸 자국이다. 그 자국을 볼 때마다 여름이 나에게 새겨졌다고 생각했다. 여름이 만들어낸 자국은 몇 개 더 있었다. 시계 자국과 반소매 자국. 뜨겁고 따갑고 조금은 아리다. 태양에 상처받은 피부는 그렇게 티가 나는데 마음에 생긴 상처는 겉으로 티가 나질 않는다. 내 안에서 타들어 가는 것들이 재가 되어 가루가 될 때까지 꼭꼭 숨긴다. 어쩔 땐 나조차도 알아차리기 힘들다. 어찌나 시치미를 잘 떼는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신발장에서 빨간색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엔 작년 여름을 기억하는 샌들이 들어있다. 상자를 열자 흙먼지가 묻어있고 바닥이 닳아있는 샌들이 보였다. 다시 신어보니 발이 샌들을 기억하는 듯했다. 발에 꼭 맞고 폭신한 느낌은 여전했다. 정말 잘 신었는데… 같이 한강을 걷고 골목 여행을 하며 빗속을 거닐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작년 여름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다. 아팠던 것 같은데 뭐 때문에 아파했는지 자세히 모르겠다. 내가 고질병처럼 가지고 있던 불안, 걱정, 외로움, 가난일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고통이지 싶다. 그 시절은 좀 힘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매년 작년과 올해를 비교한다. 작년보다 덥다 안 덥다. 춥다 안 춥다. 하지만 난 기억력이 좋지 않다. 늘 올해가 제일 덥고 긴 장마가 지겹고 얼얼하도록 춥고 삶이 고통스럽다.
분명 더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를 잘 지나왔다. 흘러가는 계절처럼 지금 가지고 있는 힘듦도 지나갈 것이다. 여름은 몸에 선명한 자국을 남긴다. 여름 내내 자리 잡았던 자국은 가을이 깊어지면서 흐려지고 겨울이 되면 사라진다. 다시 예전에 나로 되돌아온다. 무언가 지금의 나를 어둡게 만들었어도 가을이 되고 겨울이 오면 그 상처는 분명 흐려질 것이다. 상처가 흐려졌다는 건 그만큼 잘 견뎌냈다는 거다.
여름이다. 다시 만난 여름이 나에게 어떻게 새겨질지 궁금하다. 부디 덜 아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