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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l 19. 2022

버려야 하는데 버리질 못했다

묶어둔 봉지 사이에 검은 점들이 움직인다. 그 점들은 집 안에도 몇 개 있고 그것들은 날아다닌다. 눈앞을 왔다 갔다 하다가 얼굴에 앉기도 했다. 정말 걸리적거린다. 보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눈에 보인다. 현관 앞에 툭 놓아둔 커다란 봉지는 존재감이 너무나 크다. 냉장고 문을 열 때, 화장실에 갈 때마다 보인다. 버려야 하는데 진짜 버려야 하는데. 생각은 생각으로 그치고 만다. 버리면 간단히 해결된 것을 미루고 또 미룬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보낸 두 번째 날이다. 주말의 마지막 밤이고 내일은 휴일이다. 어쩌다보니 이틀 연속으로 방구석 탐험을 하게 되었다. 탐험 장소는 테이블 겸 식탁, 주방, 침대가 전부다. 앉아있다가 누웠다가 다시 앉아있었다. 덥다는 핑계로 하루를 집에서 보냈고 비가 온다는 핑계로 하루를 집에만 있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기대했지만 듣지 못했다. 열어둔 창문으로는 바쁘게 움직이는 자동차 소리, 시끄럽게 소리치며 떠드는 말소리, 옆 건물 실내 야구장에서 야구 배트를 치는 소리뿐이다. 더 이상 기다리는 비가 내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나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가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봉지 옆에 또 다른 봉지가 생겼다. 투명한 비닐봉지에는 알맹이를 먹고 남은 껍질들이 들어있다. 과자봉지, 맥주캔, 플라스틱 콜라병 등이다. 알맹이들은 모두 내 뱃속으로 들어갔고 그것들은 봉지 안으로 분리되었다. 이것도 버려야 하는데. 걸리적거리는 것이 두 개로 늘어났다. 불안한 마음에 집안을 둘러보자 버려야 할 것이 또 눈에 들어왔다. 무선 청소기 먼지 통이다. 맙소사!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하지만 청소기 먼지 통은 숨겨져 있으니까 괜찮았다. 안심됐다.


머리는 하나인데 생각은 수백 개다.

마음은 하나인데 감정은 수천 개다.


머리와 마음에 버려야 할 것들이 가득 찼다. 나아가고 있는 걸까? 멈춰 있는 걸까? 제자리걸음도 아닌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 같다.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봉지와 수많은 점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일어날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은 분리되지 않은 채 뒤섞여있다. 마음과 집이 연결되었다. 안팎으로 버려야 할 것들이 나를 감싸고 있다. 오늘의 나는 해결하지 못했으니 내일의 나에게 떠넘긴다. 내일은 기필코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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