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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l 27. 2022

하루의 마무리는 이렇게 고로케

오늘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잠과의 싸움’이다. 월요일에 걸맞게 찌뿌둥하고 이상하리만큼 피곤했다. 주말에 한 것도 없이 집에만 있었는데 왜 이렇게 졸릴까? 오전 내내 졸면서 일했다. 점심을 후딱 해치우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 좋아하던 산책도 하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서 그대로 졸았다. 오후에도 역시 졸면서 일했다. 비몽사몽 하면서 일은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 운이 좋게도 일은 평소보다 조금 빨리 마무리되었다.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휴게실로 걸어갔다. 의자가 비어있기를 기도했다. 마침 흔들의자 하나가 비어서 냉큼 앉았다. 흔들의자는 공중에 매달려있는 스윙 라탄 의자다. 의자에 깔린 초록색 매트는 세탁한 지 오래된 듯했다. 볼 때마다 점점 꼬질꼬질해진다. 앉을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나에겐 이 안락한 의자가 필요했다. 난 앉자마자 잠들었다. 졸다가 깨다가 졸다가를 반복했다. 긴 낮잠 덕분에 몸이 가뿐해졌다. 잠도 잤으니 이제 퇴근하자.


회사에서 지하철역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퇴근길에는 산책 삼아서 걸어간다. 낮에 하지 못했던 산책을 하니 마음이 가벼웠다. 비가 갠 하늘은 몽글몽글한 구름이 떠 있고 바람도 적당히 불었다. 일하는 동안 집에 가면 샤워하고 일기 쓰고 바로 잠들어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개운하니 그 생각들은 바람 따라 휘리릭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배가 고팠다. 개운함과 배고픔의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난 배가 고팠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잠까지 잤는데 소화가 어떻게 된 걸까? 잠들면서 소화까지 시키는 내 장기들에게 감탄했다.


걸으면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뭘 먹지?

난 하루의 마무리를 어떤 음식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난 진지했다. 간단하면서 적당히 배부르고 맛까지 좋은 것을 먹고 싶었다. 그리고 떠올랐다. 그건 바로 고로케!


집 맞은편 대형마트 1층 건물에 고로케 전문점이 있다. 왜 이것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느끼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게 먹고 싶었나보다. 입구에 우뚝 서 있는 풍선 인형의 손짓을 바라보며 문을 열었다. 쟁반의 종이를 깔고 집게를 챙겼다. 꽈배기, 도넛, 고로케, 와사비 게맛 샐러드가 보이자 위가 꿈틀대면서 신명 나게 움직였다. 분명 한 두 개 먹고 저녁을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계획대로 안 된다는 걸 알아버렸다. 쟁반에는 이미 고로케 4개가 담겨 있었다. 크기는 작은 거니까 적당하지 않나? 자기합리화의 끝판왕이다. 콜라를 잘 마시진 않는데 편의점에서 콜라까지 한 개 샀다. 이건 아름다운 조합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외출 후 집에 오면 옷과 가방을 정리하고 샤워부터 한다. 하지만 더는 못 기다리겠다. 손만 씻고 고로케 봉투를 열었다. 잔에 얼음을 꽉 채우고 콜라를 부었다. 콜라의 거품을 입으로 가져갔다. 몸속에 마중물 한 모금이 들어갔다. 먹방이 시작되었다. 도장깨기를 하듯 눈앞에 고로케가 하나씩 사라져갔다. 배가 서서히 차올랐다. 내가 이 맛에 먹고 또 먹는다.



에우리피데스는 말했다.


‘사람은 배가 부르면 부자든 가난하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고로케 덕분에 나의 가난함이 잠시 잊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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