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90% 교사의 가을맞이
지옥 같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왔다. 가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다. 요즘 같은 기후에서는 가을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날들이 한 달이나 될는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선선하고 건조해서 오만 잡생각들을 신경계의 말단으로 끌어내는 이 계절이 나는 좋다.
자취방에는 에어컨이 없다. 집주인은 설치해도 좋다고 했지만, 발령을 기다리며 얻었던 자취방과 정반대의 지역에 나의 근무지가 정해진 탓에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고 조용히 곧 새집을 찾아 나가리라 다짐했기 때문이다.
에어컨 없이 버티는 이번 여름은 정말 습했다. 습도가 올라가면 생길 수 있는 자연적 현상들에 대해 빠짐없이 공부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곰팡이와 벌레들을 목격했다. 엄마는 제습기를 사서 설치하라고 했지만 글쎄, 제습기에서 나오는 열기가 어마어마할뿐더러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방안의 수증기에 잠겨 잠에 들고, 깨고, (적당한) 술을 마시길 반복했던 것 같다. 그래도 괜찮았다.
다만 빨래가 문제였다. 거칠게 세탁해도 괜찮은 옷들은 (비싸게 주고 산) 건조 겸용 세탁기의 힘을 빌리면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옷들은 방 안에 건조대를 두고 말려야 했다. 당연히 그런 환경에서 옷들은 잘 마르지 않았다. 어떤 옷들은 3일이 넘도록 마르지 않아서 그 옷들에게 내가 쐬어야 할 생명 같은 선풍기 바람들을 양보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건조대에 널어서 말린 옷들은 건조기에 돌린 옷들에 비해 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리고 그 방에 같이 널려있던 내 몸과 마음도 역시 그랬다.
나는 너무 마음을 많이 쓰는 사람 같다고,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멘탈이 별로라고 생각해 왔다. 한때는 모든 것들에 최선을 다해 쏟아내는 나의 방식에 자부심이 있었지만 그게 정작 스스로를 많이 괴롭힐 수도 있다는 걸 이제 와서야 알아버렸다. 사람이 크게 바뀌긴 힘들고, 절어버린 몸과 마음을 방학 중에 정돈해야 했을 텐데 충분히 그러지 못했던 게 아쉽다. 그래도 어찌어찌 가을이 되었으니 시원한 바람에 내가 머금은 습기를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다려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