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시즌에 때 늦은 감상에 젖어 쓰는 브런치
카타르 월드컵, 그리고 박지성
월드컵 시즌이다. 대표팀의 막내였던 손흥민이 어느새 주장이 되고, 김민재, 이강인 등 젊은 피가 가세한 덕에 국민들의 기대치도 크다. 특히, 나처럼 2002년 월드컵의 감동으로 조기교육(?)된 30대 초중반에겐 더더욱 마음 속 무언가가가 뜨거워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내 인생의 첫 월드컵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었다. 하석주, 최용수 등 지금도 팬들의 기억속에 자리잡은 선수들이, 유럽의 벽을 넘지 못해 좌절하는 모습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할 정도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나는 괜시리 분한 마음에 축구게임으로나마 멕시코나 네덜란드에 분풀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개최되었다. 비록 공동개최지만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고대하던 첫승과 4강 진출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적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월드컵 신드롬의 중심에는, 박지성이 있었다.
월드컵 전까진 주목받지 못하던, 여드름 흔적이 자욱한 어린 선수는 마치 월드컵이 자신을 위한 무대인것처럼 활약했다.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과 유럽선수들 대비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하는 끈기있는 플레이가 박지성을 더욱 스타로 만들었다. 물론, 이 스토리의 중심엔 묵직한 그의 실력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평발, 그리고 티눈
박지성의 신체적 불리함 중 하나는 “평발”이었고, 나 역시 그러하다. 곡선이 있어야 할 발바닥은,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평평하다. 사실 평발이 아닌 상태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불편함을 말하긴 애매하지만, 괜히 평발 관련 글을 보면 나도 남들보다 오래 서있는게 유독 피곤했던것 같기도 하다. 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진 모르지만, 발의 압력이 분산되지 못해서 그런지 굳은 살이나 물집, 그리고 티눈도 잘 생기는 편이었다.
처음 티눈이 생겼던건 초등학교 2~3학년 즈음이었다. 친구들과 뛰고 놀면 자꾸 발이 불편해서 뭔가 했더니, 엄지 발가락 바로 아래에 티눈이 생겼었다. 좋을것 하나도 없는 것인데, 어릴땐 괜히 내 발바닥 한가운데 생긴 허연 점도 아니고 뼈도 아닌 무언가가 신기했다. 그리고 괜히 이걸 없애보고 싶다는 생각에, 매일 같이 약을 바르고 손톱깎이로 조금씩 없애 나가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압력을 분산하지 못하는 발을 타고나서인지, 갓 10대에 들어선 나는 티눈과의 우직한 싸움을 벌였다. 어디서 배운것도 아닌데, 약을 바르고 뜨거운 물에 발을 담궈가며 지독하게도 티눈을 갉아내려갔다. 그리고 그렇게 2~3주가 지난 후, 나는 내 발바닥 한가운데 있던 티눈을 완전히 없애는데 성공했다.
불리함은 우직함을 만든다
난 박지성과 같이 한 경기에 10KM 이상을 달려야하는 운동선수가 아니기에, 사실 평발은 커리어에 있어 큰 불리함은 아니다. 하지만 평발이 만들어준 작은 티눈 하나는, 내가 박지성과 비슷한 마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힌트는 된 듯 하다.
난 특별히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평발이 만들어준 티눈을 없앨때처럼, 나는 매일 꾸준히 무언가에 매달리며 성과에 가까워지는 방법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방법"을 아는데는, 내가 가진 능력치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덕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글을 쓰다보니 또 삼천포로 빠진듯한 평발 직장인이다. 하지만 뭐, 이렇든 저렇든 남은 조별예선 포르투갈전만 이긴다면 이 찰나의 부끄러움도 금방 사라질듯 하다. 박지성 해설위원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도, 그리고 불리함을 극복해나가는 모든 직장인들도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