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때, 나는 중국으로 떠났다. 중문과였기 때문에 교환학생은 필수코스였다. 물론 중국어를 3년 동안 배우긴 했다. 하지만 나는 단 네 마디밖에 할 줄 몰랐다. 이름, 국적, 전공을 소개하는 말과 “저 중국어 조금 할 수 있어요.”가 끝이었다. 중국인만 보면 말을 걸어보라는 친구들도 꽤 많다. 그러면 나는 “쟤는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못 알아듣는다.”라고 피했다.
전공 수업을 들을 때는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만 모조리 골라 들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업이면 학점을 받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중문과 3학년’이 중국 대학의 교환학생 반 배정 시험에서는 고급반에 들어갔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고백하자면, 시험 전 날 유일하게 풀어본 중국어 자격증 시험 문제가 실제 시험에 그대로 출제되었다. 답을 다 알고 있던 나는 중문과 ‘부진아’에서 한순간에 ‘우등생’이 되었다. 괜히 우쭐했다.
그러나 고급반에서도 나의 실력을 숨길 수 없었다. 난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지금 몇 페이지를 공부하는 지도 옆 친구의 책을 봐야 알았다. 그러나 그 옆 친구들은 대부분 화교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중급반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당당히 중급반을 찾아가 반을 ‘내려오고’ 싶다고 말했다. ‘난 단지 회화를 잘 못할 뿐 나머지는 잘해요.’라는 태도로 거만하게 굴었다. 어쨌든 내가 고급반이 된 건 사실이니까. 그때, 선생님께서 종이 한 장을 내미셨다. 받아쓰기를 해보고 받아줄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정확히는 못 들었지만 눈치로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문제는 쉬웠다. 은행, 신용카드, 농구와 같은 간단한 단어였다. 그러나 나는 다 긴가민가했다. 획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고민했고 점을 찍었나 안 찍었나 헷갈렸다. 결국 나는 0점을 받았다.
선생님은 내 시험지를 보시고 놀라셨다. 그리고 하셨던 한마디. “네가 왜 고급반이냐?”
나는 얼굴이 시뻘게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후가 더 가관이었다. 전공을 물어보셔서 중문과라고 답하면 “중문과인데 이러냐?”, 학년을 대답하면 “3학년인데 지금까지 넌 뭐했냐”라고 하셨다. 포르투갈, 베트남, 라오스 등 각국의 학생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시선이 너무나 따가웠다.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우리 학과, 학교, 한국이 망신을 당하는 것 같아 지옥 같은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초급반으로 가라고 하셨다. 초급반이라니... 초급반에서는 ‘엄마’,‘아빠’,‘한국’ 같은 단어를 배운다. 비행기를 타고 중국까지 온 ‘중문과 3학년’이 그 기초 단어를 배우는 것은 말이 안 됐다. 한국에서 학습지로도 배울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존심을 버리고 싹싹 빌었다. 속은 타들어가는데 떠오르는 단어는 세 개뿐이었다. “선생님, 내일, 백점.” 파리가 앞다리를 비비듯 열심히 한 시간을 애원했다. 물론 날 부러워하던 한국 친구들과 세계 각국의 인재들 앞에서였다
이후, 나는 받아쓰기 재시험을 거쳐 중급반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겉 멋만 들고 거만했던 ‘중문과 3학년’이선생님께 받아달라고 애원하던 그때,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남들 앞에서 보여주던 그 경험은 지옥 같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밑바닥인 중국어 실력이 언제 들통날까 전전긍긍하던 그때가 더 괴롭지 않았나 싶다. 받아쓰기 0점을 받았을 때의 창피는 그저 한 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중국어만 보면 어떻게 피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의 스트레스는 자존감마저도 0점으로 만들었다. 숨기고 피하는 것이야말로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