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부모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주신 전집이 기억났다. 그때 내 나이에 맞지 않은 수준이었는지 난 그 전집을 자주 보지 않았다. 전집에 딸려 있던 테이프를 몇 번 듣고 말았던 것이 전부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내가 책을 읽었었나 싶을 정도로 그 시절 읽었던 책 중 기억에 남는 책이 한 권도 없다는 것이 놀랍다. 대학교 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가끔씩 책을 빌려 봤지만 큰 울림을 줬던 책을 만나지는 못했다. 학창 시절 나에게 책이란 나와 친하지 않은 전혀 영향력 없는 그런 존재였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게 됐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동료가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나도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아 책을 집어 들었지만 불행히도 어쩌다 내가 집어 든 책은 나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처음으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로 이직한 회사는 국내 주요 굵직한 대기업의 기업 사이트를 제작해 주는 회사였다. 내 나이 20대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난 그곳에서 기획업무를 담당하는 기획자였고, 카피를 잘 만드는 기획자, 기획력이 뛰어난 기획자, 창의력이 뛰어난 기획자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있고 나에게 없는 기획력과 창의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저마다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는 선배들을 지켜보니 다들 책을 가까이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책뿐 아니라 영화, 콘서트, 사람들과의 대화 등 나는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일상 속에서 자극을 받고 있었다.
기업의 브랜딩을 제안하고 기획하는 회사 특성상 직원들이 읽어야 할 책들이 때마다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부럽게 바라보던 선배들이 읽고 싶은 책들이 회사 도서 구매 목록으로 올라왔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랐던 새내기 기획자였던 나에겐 선배들의 독서 목록이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선배들이 갖고 있는 기획력과 창의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필요한 책을 읽다 보니 그전에 읽었던 책들과 다르게 책을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며칠 동안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한번 맛본 독서의 재미는 아무리 회사일이 바빠도 내 삶에 가늘고 길게 이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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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서를 통해 나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출산을 하고 우연히 ‘책육아’에 대해 알게 되었다. 우연히 알게 된 ‘책육아’가 무엇인지 궁금해 관련된 육아서들을 찾아 읽게 되었다. 책육아가 무엇인지 궁금해 읽기 시작했던 육아서가 나의 어린 시절과 나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게 해 주웠다. 육아서를 통해 나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육아서를 읽으며 과거의 경험들을 회상하게 되었고 그동안 나에게 벌어진 상황에 내가 선택한 행동들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취했던 행동들엔 자기 효능감 부족, 자신감 부족, 자존감 부족 등 부족과 결핍이라는 단어들이 따라다니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게 부족했던 자기 효능감, 자신감, 자존감 등 자신을 제일 먼저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내 아이에게는 갖게 해주고 싶었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육아서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고, 육아서는 나에게 그동안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던 것들을 들려주었다.
처음 하는 육아, 내가 미처 모르고 저지르는 실수를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육아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무지와 부족함이 계속 드러났다. 내가 부모님께 가장 큰 영향을 받았듯이 내 아이도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평소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행동, 말투, 눈빛들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부족했던 것들은 최대한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내 부모님 또한 나에게 부족과 결핍을 일부러 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왔던 행동과 말투 등 모든 것들이 나에게 스며들어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내가 인지하지 못한 채 하는 행동들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육아서를 읽으며 내 어린 시절을 마주하게 되었고, 내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먼저 보듬어 주고, 내 존재에 대해 인정해 줘야 했다. 엄마인 나부터 나 자신을 채우고 깨 부수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 방법으로 독서만 한 것이 없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자고 있는 새벽 시간과 출퇴근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나를 찾다 깰까 봐 침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스탠드 불을 켜고 숨죽여 책을 읽어야 할 때도 있었다.
내 아이는 나처럼 타인의 눈치를 보며 인정받길를 갈구하며 찌질한 모습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고난이 있을 때마다 뒤로 숨고, 좌절하고 절망하며 흔들리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육아서를 읽으며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은지 더욱더 명확해져 갔다. 나 또한 육아를 하며 직장생활을 하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로 인해 나의 중심을 흔들지 못하도록 내공을 다져야 했다. 그 내공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독서를 해야 했다.
육아도 공부가 필요하다.
운전을 하려면 운전면허증을 따야 한다.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우리는 며칠, 길게는 몇 개월 동안 공부를 해야 한다. 운전면허증에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새 생명을 키우는 위대한 육아라는 쉽지 않은 시험에 책 한 권 읽어보지 않고 바로 시험장에 나가는 것은 너무 무모한 짓이다. 혹시 책 한 권 보지 않고 시험장에 이미 나갔다면 자신이 너무 미숙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육아서를 읽었다 해서 아이를 잘 키우는 법에 대해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의 실수가 아이의 삶에 큰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 한 발자국 내딛기 힘들 때 나를 이끌어 주었던 것은 '육아서'였다.
육아서를 통해 '최고 점수'는 받지 못할지라도 나에게 맞는, 내 가정에 맞는 '최선의 방법'은 찾을 수 있다고 지금도 믿는다.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된 지금도 나는 육아서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놓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내 품에서 떠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