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은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닦아주고 있고, 전업맘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워킹맘은 우리 아이가 들어갈 기업에서 여성도 일을 잘한다는 것을 증명하며 살고 있다. 내 딸의 미래를 닦는 사람이 워킹맘이고, 그래서 워킹맘과 전업맘은 서로 돕고 공생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워킹맘도, 영원한 전업맘도 없다.
‘내 딸의 미래를 닦는 사람이 워킹맘이다’라는 문구를 본 순간 내가 복직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어린아이를 두고 회사에 복직하는 것이 맞을까 수십 번 고민했다. 돈은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갖다 대며 복직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을 때였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만으로 복직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뭔가 허전하게 느껴졌었다.
임신을 하고 입덧을 하며 회사에 출근했을 때 선배 워킹맘들이 예전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고통스러운 입덧을 다 겪으며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입덧은 꼭 멀미를 하는 기분이었다. 멀미는 약으로 해결이나 되지 입덧은 약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언제 끝날지 사람마다 다 달라 누구도 확실하게 언제 끝난다고 말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낳고 회사에 복직하니 이젠 옆에 앉아 있는 선배 워킹맘들이 사회의 ‘영웅’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어린이집에 적응시키고 분주한 출근길을 다 겪으며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음이 너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선배 워킹맘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내가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구나, 복직할수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그들이 먼저 길을 닦아 놓았기에 내가 그들보다는 조금 더 편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 또한 후배 워킹맘들에게 쌍둥이 엄마도 복직해서 다시 일할 수 있고, 육아휴직 2년 사용해도 복귀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칠 딸아이에게도 나의 복직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사 복직을 위해 아이들을 18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 어린이집 현관문 앞에서 헤어져야 할 때 18개월 된 아이들은 울며불며 내 옷깃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표현했다. 나는 같이 울며 아이들의 손을 뿌리치며 어린이집 건물을 나와야만 했다. 어린이집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아이들의 그치지 않는 울음소리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어린이집 주변을 서성이며 이렇게까지 하면서 회사에 복직하는 것이 맞는 걸까 고민했다.
회사 복직 후에도 어린이집 문 앞에서 헤어질 때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우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지하철역으로 가는 도중에도 지금 내가 회사로 가는 것이 맞는 걸까 수없이 고민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미열이 있는 아이를 보며 같이 있어주기보다 해열제를 어린이집 가방에 챙기며 육아수첩에 38도가 넘으면 먹여달라는 메모를 적는 나를 보며 내가 지금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맞는 걸까 고민했다.
쌍둥이들을 키우며 수없이 회사에 가는 것이 맞는 걸까 고민했었다. 그럴 때마다 지금 내가 회사에 나가는 것이 언젠가 딸아이가 사회생활을 할 때 조금은 더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회사에 나갔다. 그리고 워킹맘으로 7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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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강사님은 여자는 결혼 후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 후에 인생을 살아내는 진짜 실력이 나오게 된다고 했다.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쉽게 포기했을 수많은 일들이 내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냥 여자였다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일들을 엄마들은 내 아이를 위해 결정을 하고 선택하며 해내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좀 더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현재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워킹맘과 전업맘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