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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할 윤 Sep 21. 2020

집 나가면 개고생일까, 집에 있으면 개고생일까

독일 교환학생 비하인드 스토리 #5

집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던 내가, 독일에서 6개월을 살며 느꼈던 것은 이방인이 되었을 때의 느껴지는 외로움이 생각보다 쓰라리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을 장기간 타지 살이를 하고 계신 분들이 보면 '고작 6개월 산거 가지고 뭘 안다고.'라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생각을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본가를 떠나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학교도 본가에서 지하철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위치고, 그나마 집에서 길게 나가본 게 모교 유럽 탐방 프로그램을 갔었던 2주가 최대였다. 그야말로 평생을 집에서 살아온 것이다. 이 점이 내겐 너무 갑갑했던 나머지, 나는 호시탐탐 집을 나갈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찾아왔다. 대학생인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최선의 선택은 교환학생이었다. 그래서 집을 떠나서 사는 게 정말 행복할 줄만 알았다.


독일에 온 순간,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 되었다. 내가 살았던 도시는 동양인이 얼마 없는 소도시라서 내가 지나갈 때마다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꽤나 느껴졌다. 인종차별이야 이미 익숙했던 터라 별 느낌은 없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낯설게 본다는 사실이 나에겐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언어장벽도 나를 더 소외감이 들게 했다. 나는 딱 우리나라 평균 대학생 수준의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고, 독일어는 인사말만 할 수 있었던 수준이었다. 내가 떠듬떠듬 영어나 독일어를 하면 '이 동양인 여자애는 뭐야?' 하는 표정은 그나마 양반이고, 아예 쳐다도 보지 않고 '나는 몰라.'를 시전 한다던가, 내 말을 바로 자르고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라고 하기도 했다. 말하는 나도 내 자신이 답답한데, 상대방의 표정에서 짜증이 보이면 그만큼 서러운 일도 없었다. 내가 언어를 잘했으면 이런 무시를 안 당할려나? 아니면 그냥 동양인이라서 그러는걸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현지 대학교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대부분 다 친절했지만, 나를 '한국에서 온 외국인 친구'로 보기보다는 '도와줘야 하는 동양인 여자애'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순수하게 '이 친구는 외국인이니까 챙겨줘야지.' 이런게 아니라, '에휴 얘 좀 챙겨줘야겠네.' 이런 느낌이랄까? 파티에서도 나와 교류하고 싶어서 말을 건다기보다는, 안 걸어주기는 그러니 마지못해 말을 걸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괜한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을 느낄 때마다 내 자신이 많이 작아졌다. 언어 실력 때문인지, 동양인이라는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친구들과 동등하게 친해질 수 없다는 장벽이 느껴져서 나중에는 독일 친구들이랑은 잘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독일 학생들이 다 그렇다는 것 절대! 아니다! 친절한 친구들도 정말 많다) 


이 외에도 행정처리를 할 때 처리를 굉장히 대충 한다던가, 컴플레인을 해도 나의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던가,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이 독일에서 제한되는 것을 느끼면서 집을 떠나 이방인으로 산다는 게 참 힘든 일이란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터놓을 사람들이 없다는 것도 맘고생의 큰 몫을 차지했다. 6개월을 산 나도 이런데,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타지에서 살고 계신 분들은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셨을까. 그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사실 나는 해외취업을 꽤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평생을 집에서 살아왔으니 능력이 된다면 글로벌하게 살아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교환학생도 훗날 해외취업을 위한 일종의 밑거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방인'이라는 신분으로 겪는 일들이 썩 좋지 않았고, 내가 정말 취업으로 해외생활을 할 경우 한국 친구들처럼 깊은 유대감을 나눌 친구나 가족은 없을 것이기에 그때 느낄 외로움을 견딜 자신이 없을 것 같았다. 자립적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생각보다 외로움을 잘 타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얼마 후에 미국에 살고 계신 막내이모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이 얘기를 해드렸더니 이모가 하셨던 말이 인상 깊었다. 


 "보수적인 환경에서 주류의 삶을 살고 싶은지, 아니면 자유로운 환경에서 비주류의 삶을 살고 싶은지 잘 생각해보렴."


이 말을 듣고 지금의 내가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사실 주류여도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힘들 것이고, 비주류여도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다면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집 나가면 개고생 일지, 집에 있는 게 개고생 일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삶이든 가벼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집 나가서 고생을 해봤기 때문에 집에 있는 게 좋은데, 요즘 집에 너무 있으니까 나가고 싶어진다. 둘 다 개고생이라면 그냥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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