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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할 윤 Sep 04. 2020

워커홀릭 대학생이 독일의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법

독일 교환학생 비하인드 스토리 #04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행복했던 순간들을 돌이켜 보자면 많은 순간들이 있다. 물론, 화려한 축제와 아름다운 여행지도 너무 좋았지만 가장 만족스러운 때를 뽑자면 친구들과 평범한 하루를 보냈을 때를 뽑고 싶다. 학업과 알바, 대외활동, 자격증 공부로 가득한 삶에 회의감을 느꼈던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이 '평범하고 여유로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갤러리를 뒤져보다가 처음 독일 대학교에 가서 오리엔테이션을 했을 때의 사진을 봤는데 마음이 되게 먹먹했다. 그때는 평범하게 느껴졌던 하루가, 지금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아름답고 예쁜 하루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내가 독일에서 보냈던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하루를 돌이켜 보고자 한다. 


내 방에는 작은 발코니가 딸려있었다. 발코니로 나가면 무성한 숲이 있었다. 사실 진짜 숲은 아니고, 나무랑 풀이 많은 공터같은 곳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마치 영화처럼, 아침에 수풀 사이로 햇빛이 들면서 산뜻하게 침대에서 일어났었다. 서울에서라면 절대 있을 수 없었던 풍경이었을텐데.


아침은 주로 씨리얼과 계란 후라이, 빵, 과일을 먹었다. 나랑 룸메이트 둘 다 한식을 막 그리워하는 스타일은 아니여서 한 달간은 매일 서양식 아침을 먹으며 잘 살았던 것 같다. 독일 씨리얼이 참 맛있어서 매주마다 새로운 씨리얼을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나중에는 밥이 그리워 밥솥을 사긴 했다만.. 한국에 돌아오니 막상 저렇게 밥을 먹을 일이 없어서 저 아침이 종종 생각난다.


개강 전에 한 주동안은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아침에는 독일어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학교생활에 대한 교육을 받는 일정이었다. 한국에서도 아침 9시 수업은 피해다녔는데.. 5일 내내 9시 수업이라니.. 피곤했지만 독일어 수업이 초등학교 영어수업 시간처럼 재밌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아침 수업이 끝나면 오후 교육까지 텀이 너무 길어서 집으로 와서 쇼핑을 하거나 누워있다가 학교를 다시 갔었다.


정말 작지만 정들었던 우리 대학교.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랑 비슷한 크기이다. 처음에는 너무 작아서 환상이 많이 깨졌는데 다니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다. 작은 뿐이지 나름 있을 건 다 있다! 물론 옆동네에 크고 멋있는 대학교가 있어서 거기서 공부를 많이 했지만! 하하.


이게 아마 처음으로 먹었던 학식이었던 것 같다. 좀 부실해보이는데 이 날은 메뉴가 별로였었다. 원래는 나름 맛있게 나오는 편이라 집에 먹을 거 없으면 아침에 수업이 끝나도 학교에서 밥 먹고 가기도 했다. 가격도 2.7유로로 가성비 최고의 식사였다. 독일은 감자가 주식이라 감자 퓨레나 감자 튀김은 항상 나온다. 저 보라색은 적양배추로 만든 사우어크라우트(독일식 절임음식)이다. 그리고 음식이 좀 짠 편이라 간이 매우 복불복이다. 엄청 짤 때는 많이 못 먹고 남겨야 했어서 독일인들의 입맛이 참 원망스럽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 교육 시작하기 전까지 집 앞 쇼핑몰에서 많이 놀았다. 독일 도착한 지 얼마 안됐을 때라 살 것도 많아서 REWE(레베)라는 마트에서 장보고, dm(데엠)이라는 드럭스토어에서 화장품을 사고, 독일의 다이소 같은 Euroshop(유로샵)에서 생필품을 털어왔었다. 장보는 재미를 알게 해준 소중한 공간이다.


거듭되는 양식에 지친 나와 룸메와 옆집 일본 친구는 밥솥을 알아보러 다녔다. 신기하게도 독일 전자제품 가게에 미니밥솥을 팔긴 한다. 다만 가격이 좀 비싸서 한국에서 미니 밥솥을 사올걸 후회했다. 다행히 인터넷에서 더 저렴한 밥솥을 찾아서 한국에 가기 전까지 그걸로 잘 먹고 살았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지!


다이슨 청소기도 구경했었다. 가격대가 다양했는데 400유로~600유로 정도였던 것 같다. 유럽은 혹시나 더 쌀까 했더니 비싼건 매한가지구나.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저런 청소기 살 수 있을까? 하는 쓸떼없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교육을 갔다가 동네로 도착하니 예쁜 노을이 지고 있었다. 9월~10월 초의 유럽은 참 예쁘다. 날씨도 선선하고, 하늘색도 예뻐서 고운 색깔의 노을을 보기 쉽다. 노을이 질 때마다 친구들이랑 나란히 서서 한참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역시 한국인은 인스타 감성이라며 깔깔 웃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학교에서 받아온 웰컴 키트이다. 사실 정말 별거 없었다. 외부에서 협찬해준 젤리와 박하사탕과 신발주머니같이 생긴 가방과 쓸일 없었던 명찰. 그때는 그래도 독일 대학교 물건 받았다는 사실이 좋아서 뿌듯했었던 것 같다.


저녁을 차리기 귀찮아서 룸메와 되너(독일말로 케밥)를 사와서 먹었다. 버스정류장 앞에 사람이 줄서있는 되너 가게가 있었는데, 뭔가 맛집의 향기가 나서 거기서 되너를 사게 되었다. 열심히 영어로 말했더니 터키 직원이 영어를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번역기를 돌려서 겨우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자기들 딴에는 장난을 걸고 싶었는지 "차이나? 니하오?" 라고 말하는데 어이없고 기분이 나빴다. 6개월 동안 이런 말을 수없이 많이 들었지만 그럴때마다 이방인이라서 느껴야 했던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래도 되너는 참 맛있었다. 


이거는 나의 독일 버디가 살던 기숙사에 놀러갔을 때 찍었던 도로 사진이다. 독일은 9시만 넘으면 거리가 정말 한산해진다. 특히 우리 동네가 소도시라서 그런 것도 있다. 독일 20대들도 놀고 싶을 땐 펍도 가고, 클럽도 가지만 보통 친구들과 놀 때는 집에서 술마시고 노는 문화라서 집에 콕 박혀있다. 그래서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우리집에 갈 때 거리에 사람이 없어서 많이 무서웠던 적이 많다. 그때는 밝고 시끌벅적한 한국의 밤이 너무 그리웠다.



학기 중에는 보통 이런 일상을 보냈다. 정말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학교도 일찍 끝나서 집에서 뒹굴거리거나, 친구네 집에 가서 놀거나 그랬다. 한국에서의 나는 절대 느낄 수 없었던 여유로움을 여기서 충분하게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독일에서의 평범한 일상이 많이 그립다. 언제쯤 다시 이런 여유를 느껴 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이 여유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준 고마운 친구들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는 정말 몰랐다. 평범한 하루가 지금의 내가 제일 그리워하는 시간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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