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면 개고생일까, 집에 있으면 개고생일까

독일 교환학생 비하인드 스토리 #5

by 생각할 윤

집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던 내가, 독일에서 6개월을 살며 느꼈던 것은 이방인이 되었을 때의 느껴지는 외로움이 생각보다 쓰라리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을 장기간 타지 살이를 하고 계신 분들이 보면 '고작 6개월 산거 가지고 뭘 안다고.'라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생각을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본가를 떠나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학교도 본가에서 지하철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위치고, 그나마 집에서 길게 나가본 게 모교 유럽 탐방 프로그램을 갔었던 2주가 최대였다. 그야말로 평생을 집에서 살아온 것이다. 이 점이 내겐 너무 갑갑했던 나머지, 나는 호시탐탐 집을 나갈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찾아왔다. 대학생인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최선의 선택은 교환학생이었다. 그래서 집을 떠나서 사는 게 정말 행복할 줄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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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온 순간,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 되었다. 내가 살았던 도시는 동양인이 얼마 없는 소도시라서 내가 지나갈 때마다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꽤나 느껴졌다. 인종차별이야 이미 익숙했던 터라 별 느낌은 없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낯설게 본다는 사실이 나에겐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언어장벽도 나를 더 소외감이 들게 했다. 나는 딱 우리나라 평균 대학생 수준의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고, 독일어는 인사말만 할 수 있었던 수준이었다. 내가 떠듬떠듬 영어나 독일어를 하면 '이 동양인 여자애는 뭐야?' 하는 표정은 그나마 양반이고, 아예 쳐다도 보지 않고 '나는 몰라.'를 시전 한다던가, 내 말을 바로 자르고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라고 하기도 했다. 말하는 나도 내 자신이 답답한데, 상대방의 표정에서 짜증이 보이면 그만큼 서러운 일도 없었다. 내가 언어를 잘했으면 이런 무시를 안 당할려나? 아니면 그냥 동양인이라서 그러는걸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현지 대학교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대부분 다 친절했지만, 나를 '한국에서 온 외국인 친구'로 보기보다는 '도와줘야 하는 동양인 여자애'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순수하게 '이 친구는 외국인이니까 챙겨줘야지.' 이런게 아니라, '에휴 얘 좀 챙겨줘야겠네.' 이런 느낌이랄까? 파티에서도 나와 교류하고 싶어서 말을 건다기보다는, 안 걸어주기는 그러니 마지못해 말을 걸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괜한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을 느낄 때마다 내 자신이 많이 작아졌다. 언어 실력 때문인지, 동양인이라는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친구들과 동등하게 친해질 수 없다는 장벽이 느껴져서 나중에는 독일 친구들이랑은 잘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독일 학생들이 다 그렇다는 것 절대! 아니다! 친절한 친구들도 정말 많다)


이 외에도 행정처리를 할 때 처리를 굉장히 대충 한다던가, 컴플레인을 해도 나의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던가,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이 독일에서 제한되는 것을 느끼면서 집을 떠나 이방인으로 산다는 게 참 힘든 일이란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터놓을 사람들이 없다는 것도 맘고생의 큰 몫을 차지했다. 6개월을 산 나도 이런데,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타지에서 살고 계신 분들은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셨을까. 그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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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해외취업을 꽤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평생을 집에서 살아왔으니 능력이 된다면 글로벌하게 살아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교환학생도 훗날 해외취업을 위한 일종의 밑거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방인'이라는 신분으로 겪는 일들이 썩 좋지 않았고, 내가 정말 취업으로 해외생활을 할 경우 한국 친구들처럼 깊은 유대감을 나눌 친구나 가족은 없을 것이기에 그때 느낄 외로움을 견딜 자신이 없을 것 같았다. 자립적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생각보다 외로움을 잘 타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얼마 후에 미국에 살고 계신 막내이모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이 얘기를 해드렸더니 이모가 하셨던 말이 인상 깊었다.


"보수적인 환경에서 주류의 삶을 살고 싶은지, 아니면 자유로운 환경에서 비주류의 삶을 살고 싶은지 잘 생각해보렴."


이 말을 듣고 지금의 내가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사실 주류여도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힘들 것이고, 비주류여도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다면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집 나가면 개고생 일지, 집에 있는 게 개고생 일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삶이든 가벼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집 나가서 고생을 해봤기 때문에 집에 있는 게 좋은데, 요즘 집에 너무 있으니까 나가고 싶어진다. 둘 다 개고생이라면 그냥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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