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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할 윤 Oct 01. 2020

타지에서 아픈 게 제일 서러워

독일 교환학생 비하인드 스토리 #6

'목이 왜 이렇게 컬컬하지?'


독일에 온 지 두 달쯤 됐을 무렵, 목이 컬컬하고 거친 느낌이 들었다. 슬슬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라 환절기 감기인 줄 알고 한국에서 챙겨 온 감기약을 열심히 먹었다. 그런데 통증이 더 심해져고, 목에 상처가 난 느낌이 들었다. 핸드폰 플래시로 입 안을 비춰봤더니, 맙소사.. 편도에 고름이 가득 차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증상에 놀라서 네이버를 미친 듯이 검색했다. 열심히 뒤져본 결과, 급성 편도염인 것 같았다. 보통 면역력이 떨어졌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발생한다고 한다. 바이러스 걸릴 만한 일은 안 한 거 같은데.. 나름 잘 챙겨 먹고 다녔는데 면역이 떨어진 건가? 


독일에서 처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빠에게 내 편도 사진을 보내고 한국 이비인후과에 대신 진찰을 봐달라고 부탁드렸다. 이비인후과에서도 급성 편도염이 맞는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고, 나으려면 항생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독일 병원에 가서 빨리 진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타지에서 병원을 가야 한다니.. 그것도 진료받으려면 미리 예약을 잡아야 해서 최소 2~3일은 걸린다는 독일에서.. 너무너무 막막했다.


독일인 친구의 도움을 받을까 하다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예약을 잡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일단 혼자 부딪혀보기로 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예약환자가 없으면 당일 진료를 받아주기도 하나보다. 몇 시간을 기다리는 한이 있어도 빨리 염증을 고치고 싶었다. 구글 지도에서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아보고 나름 평점이 높은 곳을 찾아 아침 일찍 무작정 찾아갔다. 


 내가 간 병원은 가운데의 간판이다

접수부터 난관이었다. 접수를 받는 직원들이 영어를 못해서 접수를 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뒤늦게 와서 접수를 도와줬는데 보험증서를 달라고 해서 내 사보험 증서를 줬다. 그런데 내가 든 보험은 저렴한 학생용 사보험이라 공보험이 아니면 적용해줄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보험증서를 주고 보험 적용 안 해도 되니 접수만 해달라고 했다. 어렵사리 접수를 마친 후, 예약자가 많아 2시간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2시간 후에 다시 병원을 찾아갔다. 그때도 사람이 매우 많았다. 한 15명은 되어 보였다. 바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 15명을 또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한 1시간쯤 더 기다렸다. 동양인 여자애가 독일 이비인후과에서 혼자 멍 때리며 앉아있는 게 신기해 보였던지, 15명이 나를 대놓고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Frau Kim!" 기다림에 지쳐 신세한탄을 하고 있던 중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50대 후반의 인상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의사가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나는 독일어 번역기를 돌려서 유학생이라 영어로 말해도 괜찮냐고 물어봤고, 의사는 "물론! 나 영어 할 수 있어.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제대로 된 진찰을 위해 미리 영어로 준비해 갔던 증상 설명문을 보여주었다. 의사는 그걸 보더니, "그래, 네 말이 맞아. 급성 편도염인 것 같네. 혹시 너 여기에 남자친구 있니?"라고 물어봤다.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해하면서 아니라고 하니, 의사는 "아하, 이 병이 보통 바이러스 때문에 걸리는 거라 물어본 거야."라고 말했다. 약 처방과 약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의사가 "너 성이 김씨네? 한국인이구나?" 라고 물어보길래 잠깐의 잡담을 나눈 후에야 진료가 끝났다.


처방받아온 약들

독일은 항생제를 잘 안 준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의사는 목에 뿌리는 약과 항생제를 처방해주었다. 그리고 진료실을 나갈 때, '네가 빨리 낫길 바라!' 하며 나에게 악수를 해주었다. 그의 미소가 참 인상 깊었다. 처방전을 들고 병원 근처 약국에서 약을 받았다. 확실히 보험 적용을 안 하니 병원비와 약값을 포함해서 5~6만 원가량이 나왔다. 다행히 보험사에 처방전을 보냈더니 후 지급으로 보험비를 받을 수 있었다. 편도염이 생긴 게 두 달 동안 밀가루랑 고기만 엄청 먹어대서 그런 거 같아 집에 오는 길에 채소와 과일을 한 아름 사서 집에 왔다. 


진료 끝나고 집 가는 길에 찰칵!


나는 꽤나 튼튼한 신체와 체력을 갖고 있는 편이었다. 한국에서 다치거나 아파본 적이 손에 꼽아서 보험도 일부러 제일 싸고 보장 범위가 적은 독일 사보험으로 골랐다. 외국이라도 어처피 6개월 있을 건데 그 안에 아플 일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질병이 나에게 왔다는 것에 놀랐고, 한국에서 간단히 끝날 진료를 이상한 눈초리를 받으며 어렵사리 받아야 하는 것도 참 서럽기도 했다. 목 빼고 딱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엄마의 '딸, 어디 아파? 약 먹고 푹 자.' 이 한 마디가 너무 그리웠다. 푹 쉴 수 있는 한국 집이 그리웠다. 경험 쌓으려고 타지에 온 거긴 한데, 이런 경험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내 건강을 걱정해주는 사람도 없으니 서글프기도 했다. 이래서 타지에서 아프면 참 서럽다는 거구나. 내 자신을 잘 지켜야겠다. 이 날의 경험은 나를 지금도 영양제 덕후로 잘 살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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