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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성공기 Jun 29. 2020

미국에서 집 구하기: 임대 편 #2

미 동부, 뉴저지

 그는 맥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다행히도 그의 휴대폰 연락처가 동기화되어 있어 그의 아버지 번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나를 잠깐 흔들어 놓았지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내 돈을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밖에 나와서 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는 너무나 평범한 아저씨였다. 그의 아버지에게 이때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씀드렸다. 당신의 아들이 이전에 렌트비를 내지 않아 강제 퇴거 노티스를 받았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결국은 호텔에서 3주 - 4주를 묶고 있으면서 결국 내 돈으로 호텔에 묶고 있다는 것. 나만 따로 민박집에 있고 룸메는 아직 정신을 못 차려서 그 비싼 호텔(미국은 호텔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아도 1박에 20~30만 원이나 한다.)에 아직도 있다는 것을 모두 말했다. 내 평생 원하지 않은 호텔 생활은 처음이었다. 이를 모두 말씀드리니 그가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라면서, 사과부터 하셨다. "내가 자식을 키울 때, 좋은 옷만 입히면서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키웠어요. 미국 생활 첫 단추부터 안 좋은 일이 생겨 유감입니다. 제가 그동안 손해 보신 금액은 곧바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매일 아침 이 호텔에서 직장 간 출퇴근했다. 매일 50~60만 원을 잃으면서..




 내가 그의 아버지에게 전화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과 고민이 있었다. 룸메는 계속 돈을 줄 수 있다고는 하는데 현실은 나에게 손해금이 하나도 들어와 있지 않았다. 심지어 돈을 영원히 못 받게 될까 봐 뒤늦게 차용증이라도 써놓았었다. 물론 차용증도 법적 효력이 없다. 하지만 그때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할 수 있는 요구는 다 했었다. 나는 호텔에서 3주, 민박집에서 한 달을 보낸 것 같다. 매일매일 낯선 집에서 출퇴근하는 게 내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회사에서는 업무 적응을 하려고 하면, 항상 일이 터져서 매번 화장실 가는척하면서 룸메와 통화를 했다. 언젠가 한국을 떠나기 전, 이모부께서 나에게 용돈 하라면서 봉투를 하나 주셨었다. 거기에는 글귀가 쓰여있었는데, 한인을 조심하라고 했다. 지독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에 있는 한인 사기꾼들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었으나, 그게 내 상황이랑 맞물리니까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아파트에 가서 매니저에게 그간 경위를 말하고 룸메이트의 미납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아파트에 한화 약 1200만 원을 미납한 상태였다.

 



 난 그 아저씨에게 지금까지 지냈던 호텔의 영수증, 퇴거명령서 등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줬다. 돈을 받기 전까지 아저씨와 나는 몇 번을 통화하면서 아들이 그렇게 할 줄 몰랐다고, 배신감이 차오른다고 반복해서 말하셨다. 나는 이 아저씨가 우리에게 결과적으로 좋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은 그 아저씨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아들과의 단절이다. 아들은 미국에, 아저씨 본인은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교류가 거의 없던 것이다. 많은 한국의 부모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외국에 자식을 보내 놓기만 하면 알아서 잘할 거라는 것이다. 사실상 이것은 부모의 지원이 아니라 방치이자 오히려 아들을 더 나쁜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다. 그렇게 그의 아들은 방치되어버린 채로 살아왔던 것이다.


강제 퇴거 및 법원 출두 명령서 from 고등 법원, 룸메이트는 이를 보고도 별 일 아니라며 무시했다. 내가 이때 알아차려야 했었다.




 며칠 뒤 나는 손해 본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내 작은 승리였다. 내가 이 경험을 통해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나 자신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으면 그 문제는 영원히 그 상황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느 나라에 있건, 어떤 상황이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를 깨달았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고 기쁘다. 언젠가 우버를 탔었는데, 반 농담으로 난 이제 홈리스라고 했더니 기사가 엄청 웃었던 게 생각난다. 동양인 홈리스는 아마 처음 봤을 것이다. 미국에서 동양인 하면 내성적이지만 성실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가 크게 웃은 게 미안했는지 나를 위로하며, 미국을 조심하라고 했었다. 난 크게 개의치 않아했지만, 속으로는 이 상황을 꼭 해결하고 말겠다는 마음을 더 키워주었다. 내가 여기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어쩌면 난 모든 것을 잃고 한국에 돌아가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매일 돈을 돌려받기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을 찾아봤다. 그의 아버지에게서 돈을 돌려받았을 때, 난 우버 탔던 이때를 기억했다. 모든 것은 내 생각대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3편에 계속됩니다. 3편부터 실질적인 임대 방법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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