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거기에 얽힌 기억을 좋아하지 않는다. 톡 쏘는 단무지 향, 오이 특유의 냄새와 참기름 발린 김의 비린내가 한데 섞인 냄새를 맡으면 고속버스 안에서 속을 게워내던 내 모습이 생생하다 못해 트라우마로 떠오른다. 각각의 재료를 따로 놓고 보면 못 먹는 재료들도 아니고 싫어하지도 않는데 그들의 조합은 이상하리만치 단전 밑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는 분의 심기를 건들였다. 안타깝게도 유년 시절을 거쳐 청소년기 사회생활 대부분이 단체로 이동하는 게 많았으므로 창문이 막혀 시원한 공기를 들일 수 없는 종류의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은 그 시절 내내 고역이었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원래가 태생적으로 차만 타면 잠이 쏟아지게 되어있도록 시스템이 되어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자라면서 그게 멀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잠은 일종의 마취제 역할이었다. 잠을 자지 않으면 속은 어김없이 요동칠 터였다. 그렇다 보니 사람 몸에 침투한 바이러스를 대항하는 항체처럼 나는 멀미에 대처하는 요령 몇 가지를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었다. 멀미약 부착, 물과 봉지, 그리고 김치참치김밥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소풍 도시락으로 그냥 유부초밥이나 볶음밥 종류를 싸갔어도 됐을 것 같은데 왜인지 엄마는 김밥은 김밥인데 김치랑 참치만 들어간, 때로는 계란 지단이 함께하는 김밥을 싸주셨다. 소풍에 김밥이 빠지면 섭할거라나. 신기하게도 그 김밥을 먹으면 멀미를 하지 않았다.
나는 이 멀미가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워킹맘인 엄마의 아침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주기 위해 아주 먼 우주에서부터 품고 온 울렁증. 그래서 가끔은 내가 어떤 집의 아이로 가는 건지 다 알고 엄마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난 게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젖먹이일 땐 외숙모 손에 맡겨지지만 걱정 말고 출근 잘하라고 울지 않고 조용히 있을게. 문고리가 손에 잡힐 만큼 컸을 땐 아무한테도 문 안 열어주고 잘 있을게. 이미 다 알고 이해한다는 것처럼.
그럼에도 부족하지 않은 부부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멀미가 있어도 멀미하지 않는 김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또 징그럽게 커버려서 그래도 이제는 엄마가 좋아하는 김밥을 같이 먹어줄 수 있는 수준까지 극복했다. 트라우마는 흐른 시간만큼 깎이고, 깎여 생긴 틈에 엄마를 사랑하는 내가 들어찬 걸까. 엄마가 싼 김밥 말고 내가 좋아하는 김밥이 세상에 또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엄마의 요리는 내 인생에 끼치는 힘이 좀 세다. 언젠간 이 요리를 맛보지 못하는 날이 분명 올 텐데. 슬퍼지려다 굳이 애써 미리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