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날은 참 오랜만이다. 덕분에 며칠 사이 미세먼지로 뿌옇던 공기도 깨끗이 씻겨나가 반갑다. 차가운 공기는 이제 곁에 없지만 여전히 서늘한 날들 속 봄비가 많은 걸 씻어내준다. 이제는 길가에 비치되어있는 신문도 보기 어려워졌고, 버스 안에 거스름돈 기계가 작동하는 걸 본 적이 손에 꼽는다. 그럼에도 과거는 현재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머물러만 있다. 어떻게 보면 만날 일이 없던 인연을 우연히 만났던 누군가의 소식을 전해듣고 또 생각에 빠지곤 한다. 생각이라기보다, 나는 어느 쪽에 서있을까하는 줄세우기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돌려보는 것. 봄비가 이것마저 씻어내줄 수 없을까. 야속하게도 비가 그쳤다. 이제는 너가 이겨내야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눈물을 삼키며 두 주먹을 꼭 쥐어볼테다. 지난 여름 밤 그 초록한 분위기는 의외로 싱그러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