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스노어는 코펜하겐에서 남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 ‘보르딩보르’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스노어는 내가 코펜하겐에 도착하면 곧바로 보르딩보르로 가는 것 대신에, 코펜하겐에 있는 그의 친구들인 사이먼과 올라의 집에 머물면서 함께 코펜하겐을 여행하는 계획을 세웠다.
연인 사이로 함께 동거 중인 사이먼과 올라는 한 번 본 적도 없는 친구의 친구를 위해 방을 내어 주고 공항까지 자신의 차로 마중을 나와 주었다. 시작부터 감동이 밀려왔다.
사이먼과 올라의 집에 들어가면 사진에서와 같이 정사각형의 작은 공간이 나오는데 이 공간을 중심에 두고 왼쪽은 화장실, 오른쪽은 부엌, 정면에는 방, 그리고 그 방은 또 다른 방과 연결되어 있다. 이 집에 들어온 일행들 모두 네모난 바로 그 가운데 공간에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두는 것이었다. 신방장은 따로 없었다. 집 구조상 방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로 이동하려면 이 공간을 계속 맨발로 지나가야만 한다. 나에게는 마치 거실 한 가운데에 신발을 벗어둔 것 같은 일이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잠시 갸우뚱하고 있는데,
스노어 - 아무리 생각해도 집안에서 신발을 벗는 한국 문화는 참 좋은 것 같아.
사이먼 - 맞아. 나도 스노어한테서 한국의 신발 벗는 문화에 대해서 듣고 난 이후로 집에서 신발을 벗기 시작한 거야. 익숙해지니까 좋더라.
말을 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처음 만난 집주인에게 지적질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올라가 준비해준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도중, 스노어가 옆에 있던 울라를 가리키면서 나에게 말했다.
스노어 - She is made in Korea
나 - (뭘 잘못 들은 거겠지 싶어서) what?
스노어 - You know, like Samsung, Hundei. She is also made in Korea.
알고 있었다. 여기 덴마크에 한국계 입양아가 많다는 거. 하지만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또 알고 있었다. 여기 사회에서 입양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걸. 그래서 자칫 외국으로 입양되어 성장한 사람들에게 측은한 눈빛을 건네는 것은 큰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그런데 'made in Korea'라는 말에 머리가 순간 하얘졌다. 그것이 스노어의 무례한 장난인지, 가벼운 농담인지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정색을 할지, 같이 웃고 넘길지 결정할 텐데. 순간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울라가 나를 더 헷갈리게 했다. 리액션의 타잉밍도 놓치고 표정관리도 안되고 나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밥을 먹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사이먼은 이미 출근했고 올라는 오늘부터 휴가라 여행을 떠난다고 준비 중이었다.
나 - 올라, 너는 무슨 일해?
올라 - 난 사회복지사야.
나 - 여기 오기 전에 덴마크에 대해서 좀 알아봤는데 복지 시스템이 굉장히 잘 갖추어져 있는 나라더라. 그래서 궁금했어. 덴마크에도 홈리스가 있을지.
올라 - 응, 여기에도 있어.
나 -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설명해줄 수 있어?
올라 - 아무리 복지 시스템이 촘촘히 잘 짜여 있다고 해도 모든 것들을 다 해결해 주지는 않아. 다른 나라들보다는 덜 하겠지만 여기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어. 장기간의 실직이나 질병 또는 약물중독처럼 홈리스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해.
올라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집을 나섰고, 주인 없는 집에 스노어와 나만 남게 되었다. 스노어는 익숙한 듯 부엌 여기저기를 누비며 요리를 시작했다.
나 - 그런데 말이야. 너는 사이먼이랑 어떻게 친구가 된 거야?
스노어 - 사실, 사이먼은 올라 때문에 알게 된 거야. 예전에 나와 올라는 연인이었어.
나 - 뭐라고!!! 그럼 우린 지난밤에 너의 전여친네 집에서 잔 거야? 그것도 다른 남자랑 동거 중인 집에서? 이게 뭐야!
스노어 - 이봐 Ukyu boy 진정해. 여긴 덴마크라고.
나 - 아! 그래그래! 덴마크 덴마크! 그래도 이건 좀. 아… 나 지금 너무 불편하다. 그리고 너 방금 뭐라고 한 거야? 혹시 '유교'라고 한 거야?
스노어 - 응, Ukyu. Confucianism.
나 - 와! 내가 살다 살다 유교보이 소리를 듣게 되다니.
스노어 - 걱정 마, 내가 호주에서 대학 다닐 때, 올라랑 사이먼이 여행 왔었어. 우리 집에서 함께 며칠 지냈고. 그렇게 친해졌어.
나 - 아, 그래도 그렇지. 아...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스노어 - 걱정 마. 괜찮아. Korean Ukyu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