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에 맞춰 띄엄띄엄 논밭을 지나면 무진장이 나와요 넓고 크고 무궁한 불성(佛性)은 산 속 절에 있지 않아요 제법 번화가 티를 내지만 기껏해야 서로 비켜서기도 민망한 낡은 일차선 도로 옆이지 뭐예요 그래도 불심은 그럭저럭 깊은 모양인지 까만 입구 저 아래로 아래로 오랜 계단이 쿨럭이며 이어져 있어요 아이 참, 그 계단으로 아이들은 내려갈 수 없대요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요 그 소리를 따라 ㄱ자로 ㄷ자로 다시 ㄹ자로 쪽 늘어선 쪽마루에선 매니큐어 바른 손들이 청단 홍단 화투패를 내려치다가 담뱃재를 털다가 껌을 딱딱이며 웅얼거리는 소리로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요 이모라고 할까 언니라고 할까 아니면 아가씨라도 해야 하나 아이는 고민하다가 왜 그들은 이 대낮에 걸쳤다고 말하기에도 미안한 속옷만 입고 있을까 또 갸웃해요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아요 시골 버스 냄새가 울렁거려요 멀미나는 것처럼 어금니께가 시큰거리고 곧 질려버려요 얼굴도 없는 손이 어깨동무를 해줘요 오늘이 어린이날이래요 어깨동무 부록이 키티 도시락이라고 손들이 말해요 고양이의 분홍리본이 아이에게 야옹거려요 아이도 야옹거리게 될까요
엄마가 왔어요 그제야 아이는 그 거룩한 무진장을 떠나요 띄어띄엄 논밭을 거슬러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는 눈웃음치며 미소짓는 부처님을 본 것 같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