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김치를 자주 담근다.
워낙에 부지런하기도 하거니와 김치를 자주 담그는 이유에는 나와 둘째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담뿍 담겼음을 안다. 김치는 꼭 우리집에 와서 담그는데 내막을 알 길 없는 지인들은 시어머니가 오셔서 신경 쓰이겠다고, 혹은 차라리 사다 먹는게 더 편하지 않냐고 은근히 내 편 들어주는 말을 한다.
물론 신경도 쓰이고 불편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내가 어머니의 김치 담그기를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김치 양념에 싸 먹는 굴쌈, 그 매콤하고도 시원한 바다 맛의 유혹 때문이다.
강원도, 그것도 머리를 감고 들어오는 그 짧은 사이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달리는 쨍한 추위의 철원에서는 겨울 김장이 행사였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그 양도 많거니와 부대 김장을 또 해야 하기 때문에 군인 가족들은 꽤 여러번 김장을 해야했다. 그러면 절로 잔치 분위기가 되니 삶은 고기에, 혹은 귀한 작고 까만 굴에 배추 속잎을 똑똑 떼어내어 양념을 삭삭 발라 돌돌 말아 입이 터질 듯 먹던 그 맛이 어린 마음에도 기가 막혔다.
수원이 고향인 시어머니는 일찍부터 나의 철원 김장 쌈싸먹기 이야기에 깊게 공감해서 그때부터 김장 때만 되면 온갖 쌈 준비에 더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던 것이 내 입맛을 꼭 닮은 둘째가 커가면서 쌈먹기를 좋아하자 어머니는 두세 포기도 좋고 서너 포기도 좋고, 시도때도 없이 김치담그기를 행하셨다. 물론 그 목적은 여전히 23년째 새아기인 나와 둘째에게 맛있는 쌈을 마음껏 먹이려는 마음이다.
배가 아프고 입술 주위가 매운 맛에 얼얼할 정도로 먹어야 드는 아 쌈 좀 먹었구나 하는 만족감. 특히 쌈은 배추 포기의 작고 노란 속잎에 먹어야 제 맛이라 속잎만 떼어내어 먹고 나면 속이 텅 비어 헐렁헐렁 기운 빠진 배추포기가 안쓰럽기도 하다. 삶은 고기도 좋지만 크지 않은 굴과 함께 먹어야 시원한 겨울 바다를 내 입안에 두는 듯해서 더 좋다.
3일간 수원 방문을 다녀오신 어머니가 내일 집에 오신다. 김치를 담그실 거다. 나와 둘째는 벌써부터 입안에 침이 고이고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내일은 철원의 추억과 어머니의 마음이 잘 말아진 쌈 한 번 요망지게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