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대답은 '당연하죠!'
나의 첫 브라질 친구 Gabi에게 물었다.
"이제 막 주재원을 시작하는 엄마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혹은 주재원 생활에 꼭 필요하다 싶은 건 뭐야?"
"음.. 무엇보다 첫 번째는 영어. 내 브라질 친구들도 아무도 영어를 하지 않아. 나만 영어를 해. 주재원 시작할때 영어를 해서 다른 나라 엄마들하고도 교류하면 좋을 것 같아."
주재원 할 때 필요한 것이 뭘까? 하고 물어봤을 때 Gabi가 꼽은 첫 번째는 '영어'였다. 간혹 인도네시아 엄마 커뮤니티에
'엄마가 꼭 영어를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이 올라오곤 한다.
답변에는
'꼭 하지 않으셔도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어요'
가 많았다. 맞기는 맞는 말이긴 하다. 영어권 국가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영어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어를 못하면 좀 답답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내 아이의 플레이데이트도 적어지고 이곳의 생활반경도 좁아진다. 그리고 해외에 나왔는데, 한국에서 사귈 수 없는 다양한 국적의 엄마들을 사귀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1
일본국적의 A엄마가 있다. 그녀는 결혼 전 UN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유능한 여성이었다. 남편도 UN에서 일하기 때문에 해외생활 경험이 풍부하다. 그녀는 현재 일본엄마들의 영어를 코칭해주고 있다. 그 이유가 일본엄마들이 영어를 조금이라도 해서, 해외생활을 다양하게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는 것이 그녀가 영어 코칭을 시작한 이유다. 정말 많은 일본사람들이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데, 그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엄마가 거의 없다. 일본엄마들은 일본엄마들끼리만 소통을 한다. 둥이들과 친한 일본 친구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과 플레이 데이트를 한 후 엄마들과 항상 눈웃음과 '땡큐'가 끝이다. 간혹 내가 일본어를 익히는 것이 나을까? 싶을 정도로 친구 아이들의 엄마와 소통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
#2
B의 한국엄마가 있다. 외국엄마들과 모임을 하면 B엄마만 대화에 끼지 못했다. 살짝 번역을 해주거나, 번역기를 돌리거나 대회에 한계가 있었다. 꼭 외국엄마들과 어울릴 필요는 없지만, 아이들 교실에 한국인 비율이 적고 외국인 엄마들이 많아지면 어쩔 수 없다. 몇 개월 후 그 엄마의 낯빛이 좋지 않아, 내가 모닝커피를 제안했고 B엄마는 정말 내 앞에서 많이 울었다. 너무 힘들다고... 영어를 먼저 해야 할지, 인도네시아어를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마음같이 늘지 않는다며 울었다. 언어가 잘 되지 않으니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엄마들 모임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 엄마가 종종 잘 지내나 궁금했다.
영어도 익숙하지 않고, 인도네시아어도 공부하지 않으면 나의 독립성과 생활반경이 정말 좁아진다. 내 영어는 유창하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다. 그래서 남편의 휴가와는 상관없이 아이 둘 만 데리고 발리에 몇 번 다녀왔다. 아이 둘 데리고 해외여행하는 것에 두려움은 없다. 하지만 영어도 바하사도 안 되는 엄마들은 꼭 남편일정에만 맞춰서 가야 한다며 주재원 생활의 꽃인 여행을 자주 계획하지 못했다. 영어로 외국엄마들과의 모임은 서로 말이 어디로 옮겨갈 염려도 없어서 오히려 더 편할 때도 있다. 영어를 조금이라도 해야, 주재원 생활이 훨씬 풍부하고 다양해진다.
그리고 여러 나라 엄마들과 타향살이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자칫 좁아질 나의 사고의 넓이가 넓어지고 주재원 생활이 더 재미있어진다. 각 나라별 엄마들이 가는 마트도 다르고, 고기를 사는 곳도 다르고, 자주 가는 레스토랑도 다르다. 여기저기 엄마들에게 정보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나의 정보 양이 방대해진다. 그 외에도 학교선생님과 상담 때도 영어를 해야 한다. 학교에서 매주 날아오는 이메일도 읽어야 한다. 영어는 꼭 해야 하는 어떤 선택이 아니라, 꼭 해야 한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영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면 영어가 쉬워진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동안 우리가 한국에서 해왔던 영어는 '맞다' '틀리다' 영어였다. 그래서 한국엄마들은 영어를 할 때 내가 말하는 문장이 틀릴까 봐 대화를 주저한다. 하지만 내가 단어순서 다 바꿔서 이야기해도 일본엄마는 어떤 의미인지 다 이해하고, 나도 일본엄마가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 듯하면 내가 그 단어를 떠올려 대신 말해준다. 그리고 브라질 엄마와 대화할 때는 서로 영어를 천천히 말하고, 그녀는 내가 말하는 영어를 조금 더 집중해서 귀 기울여 들어준다. 그리고 대화란 언어 그 이상의 것이어서 상대방과 내가 잘 맞는다는 느낌이 있다면 언어가 달라도 상대방이 전하고자 하는 뜻이 다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