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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연구소장 Jun 03. 2020

예술가와 디자이너

공예가가 보는 브루노 무나리의 '예술가와 디자이너'


 젖소가 ‘음메에’ 하고 운다. 챙 넓은 모자를 쓴 남자가 책상을 앞에 두고 서있다. 엠프를 멀찍이 둔 그는 검고 조그마한 나무를 꺼내 일자로 못질을 한다. 박아 넣은 못에 금속으로 이루어진 현을 잇고, 코카콜라 병 하나를 끼워 넣는다. 팽팽해진 현과 나무 사이에 현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픽업을 위치시킨다. 이제는 악기가 된 나무를 엠프에 연결한 그는 이윽고 연주를 시작한다.


위 내용은 화이트 스트라이프(white stripe)라는 2인조 록 밴드 출신의 아티스트 잭 화이트(Jack White)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it might get loud'의 한 부분이다. 나는 한동안 새로운 일렉트릭 기타를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음악도 하고 싶고 미술도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된 그 목표는 나를 금속공예학과로 이끌었다. 그리고 내가 진학한 학과가 다양한 재료의 물성을 파악하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공간임을,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길 원했던 내게 그곳이 매우 적합한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학 후, 나는 그곳에서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들여 엉성한 기타 하나를 만들어 냈다. 엠프를 통해 기타 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발가락부터 머리끝까지 전율이 이어졌다. 정말이지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루노 무나리'의 책.            /  디자인하우스



 브루노 무나리의 예술가와 디자이너

그 경험에 조금 앞서,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만났다. 코팅되지 않은 노란 빛깔의 표지와 그리 두껍지도 크지도 않은 크기. 표지에는 '예술가'와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서로 얽히며 감싸고 있었다. 책은 제목 그대로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비교 분석한다. 디자이너, 예술가 모두 결과적으로는 '예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지만 이 둘은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다. 책 속의 표현을 빌려 이 둘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디자이너는 미학적 감각을 부여받은 기획자입니다. 그는 공동체를 위해 일합니다. (중략) 디자이너는 고정된 특정한 스타일을 갖지 않으며, 그 작업의 최종 형태는 모든 문제점을 최상의 형태로 해결하는 논리적 결과가 됩니다."



 디자이너는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이는 여러 사람과 함께 공동 작업형태로 일을 하게 됨을 의미한다. 또한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능상의 문제 해결은 물론, 작업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합리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계획과 조정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쉽게 말해 자신의 스타일보다는 공동체가 원하는 바를 지향하며, 작업을 진행하면서 모든 과정에는 타당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기분 내킬 때 작업하고, 한 가지씩만 만들며(작업에 따라 한 가지가 아닐 수도 있다. 예컨대 판화작품이나 주물을 통해 만든 조형물을 생각해보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작업하는 작가입니다.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일하고, 그가 사는 세계에서 받는 자극에 의해 생성된 감각을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로 표현하려
노력합니다. "     



 반면 예술가는 보통 공동체를 벗어나 보통은 혼자 작업을 하며, 자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려 노력한다. 즉, 예술가는 독창적인 예술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몰입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공예, 디자인과 예술의 결합

 그렇다면 '공예'는 이중 어느 분야에 속하는 것일까? 가끔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공예'를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이 오직 손으로만 물건을 만드는 '낡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예과의 성적분포가 디자인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근거로 막연히 '디자인이 공예에 비해 우월하다'라고 생각하는 디자인 전공 지망생들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이는 공예가 지니는 역할의 단편만을 좇았기 때문에 나온 생각이라고 본다. 현대의 공예는 '예술(Fine art)'과 '디자인(Design)'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금속, 나무, 유리, 가죽 등 재료의 특성을 파악해 디자인의 범위를 정하기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품 생산부터 대량생산까지 생산방식을 조정하기도 한다. 그런 탓인지 금속공예과에는 반지부터 시계까지 다양한 장신구는 물론이며, 기물이나 가구를 제작하고자 하는 친구들도 있고 나처럼 기타를 만드는 등 다양한 고민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고민하고 작업한다. 제각각의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학교 역시 학생들이 다양성을 가질 수 있도록 패션과 비주얼 머천다이저(VM) 등의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 덕에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학교는 물론 학교를 벗어난 사회, 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며 경력을 쌓고 있다. 나를 비롯해 함께 공부하고 작업하는 많은 친구들이 "아직 앞길을 막막하지만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은 든다."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입시, 창작을 위한 준비 기간

 솔직히 이야기해서 몇 년 동안 금속공예과에 입학하길 원해서 들어온 학생을 만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들어온 학생들 대부분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고, 신입생과 선배들의 대면식 자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전과'일 정도다. 공업디자인과나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하고자 하다 수능 성적이 저조해지면서 공예과에 들어오게 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일단은 입학했으니 다녀보라고 권하는 나도, 전과나 복수전공이 궁금한 그 친구들도 힘든 순간이다.     

 나를 포함한 미술을 시작하는 친구들의 시작은 대부분 비슷하다. 처음엔 단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았고,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너 그림 잘 그린다?"라는 칭찬과 함께 입시미술을 준비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고 무엇인가 만드는 것이 너무나 즐겁지만,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나중에는 무엇을 위해 입시미술을 준비하고 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자신이 하고 싶은 그 궁극의 '무엇'을 대학에 가면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다. 심지어는 학원 선생님이 성적에 맞추어 제안한 과에 자신의 꿈을 끼워 맞추기도 한다.       

 조형, 넓게는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은 모두 과정 중에서든 결과적으로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예술가에 가까운 사람인지, 디자이너에 가까운 사람인지, 혹은 그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는지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고민의 과정을 거쳐 단순히 '취업이 잘 되는 과', '인기가 많은 과'가 아닌 '나에게 맞는 과'가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아마 여러분의 행복한 대학생활은 물론이거니와, 좀 더 즐거운 창작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은 오래전 '스터디 헬퍼'의 블로그에 학과 소개 겸 하여 책을 추천하는 글을 요청받아 작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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