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나무는 굉장히 흔하게 만나는 실내식물이다. 새로 개업한 가게의 화분에서 흔하게 보는 동그란 잎을 접었다 편듯한 모양의 진한 초록 잎을 가진 고무나무는 인도고무나무라고 한다. 실내식물 중 무성한 잎을 가진 나무로 독보적인 벤자민도 고무나무 종류다. 또 인기 있는 고무나무로는 커다란 아몬드 모양의 연둣빛 이파리가 멋진 벵갈고무나무가 있다. 하얀 목대와 무늬 있는 초록 잎이 잘 어우러지는 벵갈고무나무는 어느 공간에 있어도 눈을 사로잡는 멋진 녀석이다. 단정한 잎맥에 대비되는 잎 가장자리의 불규칙한 초록 무늬가 얼마나 예쁜지 이 나무를 처음 봤을 때 잎을 한참 만져보며 이름을 잊지 않으려 여러 번 불러보았던 기억이 있다.
고무나무로 알려진 나무들은 비교적 키우기 쉬운 편인데 특히 자연광을 좋아한다. 인도고무나무의 광택이 있는 초록색이나 벵갈고무나무의 싱그러운 형광 초록은 자연광을 흠뻑 받은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해가 부족하면 잎이 탁한 초록색이 된다. 물 마름에도 강한 편이어서 물이 부족해도 장기간 버틸 수 있어 초보자가 키우기에도 적합하다.
40이 넘어 식물을 키우는데 재미를 붙인 나는 하나하나 모은 화분이 서른 개가 넘어가도록 화분 지름이 20센티를 넘는 식물이 없었다. 동네 화원에서 파는 3천 원, 5천 원 하는 흔한 포트 식물에 다이소에서 구입한 5천 원짜리 화분이 모여 30여 개가 되었다. 식물이 그렇게나 늘어나도록 나는 내가 식물을 잘 키워나갈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나 자신에게 그 정도의 믿음조차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한동안 꽂혀서 예쁘다고 사 모으다가, 질리고 귀찮으면 다 죽이고 빈 화분들만 당근마켓에 내놓는 날이 오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크기가 좀 큰 식물은 사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식물의 가격은 크기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그 크기는 성장한 시간에서 오기 때문이다. 죽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금액. 딱 그 정도가 내가 키우는 식물의 한계였다. 긴 원목 테이블에 주르륵 늘어선 고만고만한 화분들을 볼 때면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마치 어린아이들만 모여있는 것을 보고 불안한 어른의 마음처럼 뭔가 튼튼하고 무게가 있는 큰 식물이 있어야 중심이 잡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엄마가 오시겠다고 전화가 왔다. 딸이 시집살이하는 동안에는 얼굴 보러도 못 오셨는데 분가하고 집을 구했다니 어찌 사는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구석구석 청소도 신경 써서 하고 저녁은 뭐 맛있는걸 해 드릴까 고민하며 엄마를 모시고 왔다. 집에 오신 엄마는 일단 ‘어유~ 좋으네~’부터 시작하셨다. 현관만 들어서도 다 보이는 집안이라 그런지, 딸내미가 마음 편히 분가하고 사는 게 좋으신 건지 이제 겨우 신발만 벗으셨는데 일단 좋다고부터 하신다. 집구경 시켜드린다고 작은집 여기저기를 열어 보여드렸다. 엄마는 안방과 아이들 방을 스치듯 보시고는 부엌살림을 보시며 싱크대 문도 슬쩍 열어보시고 무심한듯한 손길로 냉장고 문도 한번 열어보셨다. 빤한 집 구조인데 괜히 ‘빨래는?’ 하며 다용도실도 한번 열었다 닫으시고서야 거실의 소파에 앉으셨다. 나는 다섯 살 아이처럼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엄마가 소파에 안착하시는 걸 보고서야 씻어둔 과일을 챙기려고 돌아섰는데 내게 엄마의 총평이 이어졌다. ‘잘해 놓고 사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과일을 챙겨 엄마 곁으로 다가앉았다. 엄마는 ‘네가 결혼한다고 할 때도 나는 쟤가 살림을 잘하려나…. 했고 네가 시집살이한다고 할 때도 쟤 성격에 시집살이를 잘하려나…. 했는데 어찌어찌 다 잘하더니 이제 자기 살림 내고서도 잘하고 사네.’ 하셨다. 나이 40이 넘어도 엄마의 칭찬을 듣고서야 안심이 된다니…. 나는 괜히 더 듣고 싶은 마음에 ‘진짜??’ 하며 어린양 굴었다. ‘그래~ 방도 잘해 놓고 냉장고 정리도 잘 해놨구 찬장도 쓰기 편하게 잘했네.’ 엄마의 이어지는 칭찬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소파에 앉은 엄마의 눈은 자연스레 베란다 창가에 늘어선 화분들로 옮겨갔다. ‘왠 화분이 이렇게 많아?’하며 엄마는 가까이 있는 이파리를 쓸어보셨다. ‘옛날엔 다 죽이더니 이젠 식물도 잘 키우네’ 하는 엄마의 말에 하나하나 사 모으다 보니 이렇게 되더라고 대답하며 나는 엄마가 알고 계신 나와 얼마큼 멀리 떨어져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엄마랑 같이 살던 시절과 따로 살아온 시간이 비슷해지고 있네 하며 흐르는 생각을 지켜보고 있는데 엄마가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다 작아?’ ‘처음엔 내가 잘 키울지 알 수 없어서 작은 걸 샀는데 큰 건 비싸더라고요. 안 그래도 너무 자잘해서 크기가 좀 되는 것도 있었으면 싶은데…. 뭐 작게 사서 크게 키우면 되지~ 생각보다 잘 안 죽더라고’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하는 나를 보며 손으로는 이파리 사이 마른 줄기 하나를 떼어내던 엄마는 ‘집안에 가장보다 큰 식물이 있는 것도 안 좋대. 대주한테 들어오는 기운을 막는단다. 큰 거를 사더라도 키가 상준 아빠보다 크면 안 되는 거야~’ 하고 일러주셨다. ‘엄마는 안 그러다가 이상한데서 할머니 같더라~’ 하며 웃어넘기는 내게 엄마는 거듭 다짐을 받았다. ‘알았어요, 알았어~ 어차피 얘네들이 그만큼 크려면 멀었어.’ 했더니 엄마는 ‘그럼 내가 사주지!’ 했다. 응? ‘집들이 선물로 사준다고, 딸내미 집 장만했는데 엄마가 그 정도는 해줘야지. 하나 골라봐. 아니다. 같이 갈 시간은 없고 엄마가 용돈 줄 테니까 그걸로 사. 꼭 화분사! 다른데 쓰지 말고!!!’ 그렇게 엄마는 10만 원이 든 봉투 하나를 억지로 쥐여주셨다. 돌아가시는 길에는 ‘너 꼭 화분 사서 엄마 사진 찍어 보내야 해!’하고 다짐까지 받고 가셨다. 이 돈으로 뭘 사지? 괜히 비싼 거 샀다가 죽이면 어쩌지? 하며 고민고민하다 문득 떠오른 식물이 바로 벵갈고무나무였다. 형광 잎이 너무 예뻐 이름조차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자꾸 불러보던 그 아이. 게다가 나무니까! 관엽식물보다는 튼튼하지 않을까? 지금 함께 살고있는 벵갈고무나무는 그렇게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이젠 그때보다 식물이 더 많아진 지금, 거실 한 켠에서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아이를 볼 때면 난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 나 잘 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