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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햇살 Jul 13. 2023

필로덴드론 실버메탈2

슬슬 더워지고 있던 초여름 날씨. 대형 하우스 온실인 화원 안은 덥고 습한 공기로 가득했다. 애초에 집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데 엄마 좋으라고 큰 인심 써서 따라나선 작은 아이는 벤치를 발견하자마자 ‘엄마, 나 여기서 쉬면 안 돼요?’ 하고 몸을 배배 꼬았다. 음료수 하나를 쥐여주며 그러라 하고는 나는 흙냄새 피어오르는 누긋한 공기를 마시며 화려한 색의 꽃과 특이한 모양의 잎이 가득한 화원 깊숙한 곳으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규모가 큰 만큼 이리저리 꼬인 오솔길 한구석의 골목만 들어서도 마치 싱그러운 야생의 숲속인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걸음을 옮기며 숨을 내쉴 때마다 내 안에 남은 화가 날숨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갖가지 톤의 초록을 만끽하며 나는 머릿속으로 지금 집에 비어있는 화분이 몇 개더라 하고 헤아려보았다. ‘물을 더디 주어서 물 마름으로 죽은 토분이 두 개, 삽목에 실패한 슬릿분이 두 개, 과습으로 죽인 다이소에서 산 세라믹 화분이 하나, 그렇게 5개… 5개 넘게 고르면 화분도 사야 해!’ 평소 고르고 골라도 7~8개에서 더 못 줄이고 화분을 더 사고하다가 결국 온 집안을 화분으로 가득 채우게 된 나는 이번에야말로 꼭 예산 안에서만 사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렇게 결심한 예산은 5만 원. 하지만 결심이 무색하게 카트는 후보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코로나 동안 반려식물이 유행하며 특이한 잎의 관엽식물이 희귀종으로 엄청난 고가에 인기몰이했는데 코로나가 끝나가며 한창 가격이 내려가는 중이라 이것저것 눈길을 사로잡는 식물들이 많았다. ‘어머, 이것도 많이 내렸네, 우와~ 이거 엄청 비쌌는데!’ 하며 만 원대의 어린 유묘 다섯 개를 챙기고는 ‘저쪽엔 뭐가 있지?’ 하고 둘러 보고 있을 때였다. 은빛 펄을 뿌린듯한 잎이 신기한 어린 식물을 발견했다. 이름은 필로덴드론 실버메탈, 타원형의 갸름한 은빛 잎이 신기하고 매력적인 식물이었다. 두, 세장의 잎을 가진 작은 포트를 양 손에 들고 ‘이것 좀 봐’ 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함께 구경하던 남편은 어디 갔는지 큰아이가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큰아이는 멋쩍은 얼굴로 한 걸음 다가서더니 ‘신기하다. 꼭 금속 칼 같은 색이네요.’하고 웃었다. 어느새 초록이들에 물들어 마음이 풀린 나는 ‘그치? 이쁘지?’ 하며 마주 웃었다. 속으로는 ‘얘가 엄마한테 혼나도 그때만 넘기면 되는구나! 하면 어쩌지?’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식물을 보고 좋아하는 엄마에게 공감해주며 웃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겠다 싶었다. 이파리 두 장짜리, 세 장짜리 들어다 놨다 하며 ‘아… 이러면 예산을 넘는데~ 그럼 화분도 사야 하는데~~’ 하며 동동거리는 내게 큰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 이 건 제가 사드릴까요?’ 기숙사 생활한다고 용돈도 적게 주는데 싶어 ‘네가 돈이 어딨어~’ 했더니 ‘용돈 모은 거 있어요. 엄마 식물 사드릴 돈은 돼요.’ 하고 웃었다. 가슴이 꽉 메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얘가 이렇게 하면 어떡해? 이렇게 생각하면 어떡해?’ 하고 오만 생각을 하며 삐져있던 건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아이는 이미 그런 생각은 집에 다 두고 왔는데 나만 아직도 끌어안고 있으면서 더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이렇게 착한 아이에게 공부로 실랑이를 하며 혼자 꽁해있던 내가 너무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마음을 꿀꺽 삼키고 나는 아이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정말? 우리 상준이가 엄마 실버메탈 사 줄 거야? 그럼 상준이가 골라줘야지” 하자 큰아이가 뿌듯한 얼굴로 여러 개의 실버메탈을 들었다 놨다 하며 신중하게 비교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 공부 같은 건 아무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데려왔던 가장 곱게 펄이 빛나던 이파리 두 장짜리 필로덴드론 실버메탈 유묘는 지금 잎이 열 장이 넘게 새로 나서 지지대가 필요할 정도로 자랐다. 이 식물을 볼 때마다 나는 그때를 떠올린다. ‘이런 마음을 가진 아이니까 다 괜찮아 ‘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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