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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ul 24. 2022

이야기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리베카 솔닛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리베카 솔닛, 창비(2021).

리베카 솔닛은 저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통해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하며 페미니즘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솔닛은 예술비평과 정치·사회·환경 등 폭넓은 분야를 아우르는 치밀하고 탄탄한 글쓰기로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솔닛의 글에 신뢰성을 부여하는 것이 그의 풍부한 경험과 예리한 분석, 명석한 통찰이라면, 그의 글을 가장 빛나게 하는 요소는 문장 속에 엿보이는 솔닛의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베카 솔닛은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되 비관하지 않는다. 미래를 향한 희망을 잃지 않되 손쉽게 낙관하지 않는다. 사회 문제와 씨름하고, 예리한 비판을 이어나가면서도 사랑과 연대를 잃지 않는 그의 자세가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솔닛은 인권운동가 패니 루 해머가 1964년에 남긴 말을 인용한다. “나는 지치고 짜증나는 데에도 지치고 짜증난다”는 해머의 말은 오늘날 끝없는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어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듯하다. 일부 사람들의 무지와 악의는 다수의 선의와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회질서가 시간을 역행하는 것 같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드물지 않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솔닛은 “사회 변화는 역사적인 흐름”이라는 점을 몇 번이고 되짚으며 독자의 포기와 체념을 걷어낸다. 솔닛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적 판결을 이끌거나 선거 결과를 바꾸거나 우리가 전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은 걸출한 천재나 독보적인 혁명가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수백만개의 작은 발걸음들”이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솔닛의 질문이 외마디 외침이 아니라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더 필요하다. 이야기를 발화하는 ‘누구’가 있어야 하며, 누구의 이야기인지 ‘들어야’하고, 누구의 이야기인지 ‘화답’할 우리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듣는 것이 공감의 행위이고 대답하는 것이 연대의 행동이라면, 이야기를 발화하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회를,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용기를 내어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닛은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 핵심임을 강조한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우리가 왜 지치고 짜증이 나는지, 그럼에도 어디로 가야하며 무엇을 사랑하고 지켜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마음속에 비관 대신 사랑과 희망의 자리를 마련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며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누구인지 더 명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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