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
나의 어릴 적 별명은 똘똘이였다. 별명이 똘똘이가 아닌, ‘깡패’였던 적이 있다. 동네 털보 아저씨가 지어준 별명이다. 그 아저씨가 깡패라고 부를 때마다 기분이 나빴지만 어른 남자인 데다가 무서워 보이는 아저씨여서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셋방은 ‘ㄷ'자형으로 부엌 딸린 방 하나씩을 여러 가구가 세를 들어 사는 마당 깊은 집이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봄이면 분홍 분꽃이 피는 화단이 있었다. 우리 셋방은 입구 쪽 끝 방이었다. 화단 넘어 건너다 보이는 방이 안채였다. 털보 아저씨는 안채에 세 들어 살면서 하청을 받아 스웨터를 짜는 요꼬 공장을 하고 있었다. 온종일 찌익찍~찌익찍~하는 요꼬 기계소리에 동네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 집에만 텔레비전이 있었으므로 마당 깊은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털보 아저씨의 눈치를 보며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차범근이 나오는 축구를 하는 날이면 마당 한가득 사람들이 모였다.
털보 아저씨가 나를 깡패라고 부른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계집애가 오빠한테 덤빈다는 거였다.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오빠와 나는 허구한 날 쌈박질을 해댔다. 싸움은 언제나 얻어터진 내가 울면서 끝났다. 남자인 데다 힘도 좋으니 무력으로 제압하면 승산이 있겠는가? 나의 전술은 ‘입’이었다. 입에 온갖 욕설을 담아 바락바락 대들었다. 오빠를 이겨먹기 위해 전략을 짜기도 했다. 막내 외삼촌이 하는 태권도장을 다니기로 했다가 나의 전략을 알아챈 오빠가 결사적으로 방해하는 바람에 다니지는 못했다. 요란한 요꼬 기계소리에 오빠의 무력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내가 내뱉는 욕설만 들렸을 테니, 털보 아저씨는 단연 내가 오빠한테 덤벼 이겨먹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털보 아저씨는 나를 깡패라고 놀려대면서도 기특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 집에 약간의 장애가 있는 예쁘장하게 생긴 어린 딸이 하나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잘 놀아주지 않아 흙바닥에서 늘 혼자 놀았다. 나는 동생들을 챙기면서 그 아이도 데리고 놀았다. 털보 아저씨는 옆집 담벼락 밑에서 놀고 있는 우리를 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쭈쭈바를 사주기도 했다. 그 집에서의 짧은 셋방살이를 끝내고 길 건너편으로 이사를 한 다음에야 깡패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다.
수개월 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털보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스웨터 공장에서 일할 때였다. 요꼬로 짠 스웨터를 납품하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온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할까 말까 하다가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오빠를 이겨먹으려 했던 깡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공장 구석에서 고개를 떨구고 실밥을 뜯고 있는 나의 뒤통수를, 멀찌감치 에서 만감으로 바라보고 있는 털보 아저씨의 눈빛을 느낄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