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의 끝을 잡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을 하루 앞두고 프리몬트 거리에 있는 호텔로 이사를 했다.
프리몬트거리에선 매 정시가 되면 길거리에 설치된 천장이 번쩍번쩍, 라이트쇼가 열린다. 하지만 천장의 네온은 계속 켜져 있기 때문에 라이트쇼가 없어도 충분히 요란스럽다. 이미 현란한 프리몬트거리를 오가며 라이트쇼가 펼쳐지면 얼마나 볼만할는지, 정시가 되길 기다렸다.
'띠띠띠 띠이-' 정각이 되었고, 라이트쇼를 시작한 건지 아닌지, 하필 그날은 제치는 건지 애매했다. 몇 차례의 정각과 라이트쇼를 거치고 나서야 이미 쇼룸 같은 그곳에서 조금 더 번쩍인다 해도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역시 라스베이거스의 매력은 구경거리라기보단 '내가 내가 아닐 수 있는 곳'이란 거다.
밤이 깊어지면서 화려한 천장을 가진 거리는 자연스럽게 야외 클럽으로 변했다. 맥주를 꿀꺽꿀꺽 넘기면서 리듬을 타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디제잉쇼 그 한가운데서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반백살이 되어가는 온몸의 관절을 불사르고 있었다.
프리몬트 거리의 비트, 북적거림, 소음은 내게 '아직은 여행 중'이라며 몇 시간 뒤 떠나야 하는 나를 위로했다.
잠들면 그대로 여행이 끝나버릴까 봐 절대로 잠들기 싫은 미국여행 마지막 밤이었다.
눈치 없는 시계는 우리가 떠나야 하는 때가 왔음을 알려주었다. 일 분 일 초가 아쉬워 밤을 지새웠던 우리는 알람소리와 동시에 언제 뭐가 그렇게 아쉬웠었냐는 듯, 순식간에 귀소모드로 변환되었다.
"whose is this?"
공항 가는 택시 뒷 좌석에서 누군가 잃어버린 핸드폰을 발견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당한 만큼 돌려준다, 그 순간 그런 말들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난 주운 핸드폰을 기사님께 전했다.
물론 카메라를 주운 것과 핸드폰을 주운 것을 비교하긴 적절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내 것이 아닌 것을 취하는 게 이렇게 불편한데, 이런 선택의 기로에 놓여보니 내 카메라를 가져간 놈을 절대로 네버 에버 이해할 수 없다.
손에 악마가 쒼 놈이 분명하다.
미국 어땠냐고?
볼리비아엔 우유니, 호주엔 핑크호수, 튀르키예엔 파묵칼레가 있다면 미국엔 그 모두와 더불어 옐로우스톤이 있다. 세계일주의 목적이 오로지 지구 곳곳에 퍼져 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경치구경이라면 미국 한 바퀴 도는 게 가성비가 좋을 수 있다.
이미 수려한 자연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복 받은 민족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해 캐년들을 돌고 솔트레이크시티를 지나 옐로우스톤까지,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돌아오며 우리는 11곳의 호텔에서 묵었고, 그것보다 더 많은 식당을 다녔다. 그러는 동안 내가 본, 다 민족국가인 미국은 인종에 따라 하는 일의 차이가 있음이었다. 서비스직은 백인들의 몫이었고 청소나 허드렛일은 남아메리카 또는 아시아인의 몫이었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이 주 동안 청소를 하는 백인을 보지 못했다.
차별은 인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와 남을 구분하려는 마음은 나보다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숱한 기준들을 만들어 낸다. 차별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회, 분명 백인들 사이에서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며 그런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은 나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여행 중 미국에 사는 내 모습을 여러 번 상상했었다. 그중 제일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투잡, 쓰리잡을 뛰어도 근근이 먹고사는 모습이었다.
여행 후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진다든지, 삶의 진리를 깨우친다든지 그런 일은 없지만, 여행을 하며 마음만큼은 진정한 대한민국의 딸이 되었다.
그러니깐 미국은 여행하긴 좋지만 살고 싶진 않은 곳이다.
1년 전 아니 이젠 2년 전이 돼버린 미국여행을 회상하며 그때의 나에게 빙의되어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짠했다 요동을 치다가 결국 함께였기 때문에 행복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점이 많은 나와 부족한 점이 많은 남편이 만나 서로서로 부족한 부분 메워주는 게 부부지 그런 게 인생이겠지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와 내 남편은 서로 합심해도 여기저기 올이 풀려 구멍이 숭숭 뚫린 인생을 뜨고 있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하지만 글을 쓰며, 구멍이 숭숭 난 넝마 같은 인생을 함께 뒤집어쓰고도 웃는 날이 더 많음을 새삼스럽게 발견했고, 그래서 우린 천생연분인가 보다.
비록 단어 한 개 한 개, 문장 한 줄 한 줄을 내 머리카락과 바꿔가며 창작의 고뇌로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만 이 주짜리 여행을 가지고 137일 동안 한바탕 찰지게 즐거웠으며 소중한 기록이 남았다.
누군가 자유여행은 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으신 분들이 우리의 어리버리 여행기를 읽으시고 용기를 내시길,
오래도록 함께한 배우자가 일상이 되신 분들께 둘 만의 여행이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음을 말씀드리며
그런 분들과 제 기록을 셰어 하길 원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지막 밤의 끈을 놓는 게 그렇게 어려웠던 것처럼 '가보자! 미국문턱 너머로'를 마무리하는 마음이 이렇게 안타까운데, 세상 모든 '장'님들의 말씀이 그러하듯 언제나 맺음말은 짧을수록 좋은 거니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