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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떡갈나무 Sep 23. 2023

예쁠 때죠.

엄마를 재활센터에 모시고 가는 날이었다. 정신없는 아침이었구나 싶게 시간이 벌써 9시를 넘기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거울도 제대로 보지 않고 나왔다는 걸 깨달은 건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난 후였지만, 다시 들어가 뭔가를 하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그 허술한 습관에 짜증도, 서글픔도 아닌 뭔가 외면하고픈 기분이 드는 찰나에, 9층에서 젊은 엄마가 양손에 아이들 둘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 못지않은 바쁜 아침을 보냈을 그 엄마 역시, 옷도 머리도 헝클어져있었다. 양치하는 시간에도 거울 한 번 볼 여유가 없던 아침이었음이 분명했다.


"안녕하세요."

낯이 익은 아이가 내게 인사를 한다.

"안녕! 아이고 예뻐라."

반짝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예쁘다는 말이 나온다. 나이를 꽤 먹었다는 걸 이럴 때 실감한다.

"예쁠 때죠."

아이 엄마가 말한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아이들이 내린다.

"잘 다녀와!"

"안녕히 가세요."


아... 10초만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걸. 예쁠 때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 엄마도 마찬가지인데.. 그 엄마야 말로 정말로 예쁜 나이인데. 서른 중반즈음의 그 나이가 얼마나 예쁜 나이인지, 미적 판단의 잔인한 평가의 언어가 아니라, 삶이 정말 반짝거리고,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허락되는, 그래서 고맙고 예쁜 그런 나이라는 걸, 30대의 나는 몰랐는데, 저 엄마도 모르는구나. 자기가 들을 말이 당연히 아니라고 여기는구나. 돌이켜보면, 20대의 두려움이나 무모함이나 미숙함이 어느 정도 정돈되고, 나의 장점과 한계를 알아서 생기는 진짜 힘이 생긴 나이였는데. 무엇을 시작해도, 무엇을 실패해도, 값진 것을 남길 수 있는, 예쁘고 아까운 나이인데.


참견 아니고, 오지랖 아니고, '라떼는'을 읊는 나이가 오기 전에, 몇 걸음 뒤에서 자신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모든 '예쁜 때'의 엄마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아니라 당신이, 편히 단장할 아침이 사치일 당신이 지금 얼마나 예쁜 나이인지 꼭 알고 있으라고. '누구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에 눌려 지레 움츠리지 말고 자신을 과대평가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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