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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떡갈나무 Sep 20. 2023

02. 환상 같은 건 없어

우리가 캐나다 토론토에 도착한 건 5월이었어. 큰 아이 고등학교 일정을 기준으로, 5월 중순엔 5일간 휴업하는 롱위켄드가 끼고, 6월 첫 주부터 약 두 주간 기말고사 기간, 그리고 기말고사 마지막날이 공식적으로 여름방학의 시작이라서, 5월에 입학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9월 새 학기에 입학을 하라고 하더라. 우린 정말 별생각 없이 편하게 놀았어. 한국에 있었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정이니 아이들도 신이 났었지. 한 것도 없으면서 캐나다를 막 사랑했어. 하늘도 땅도 나무도 심지어 공기도 푸르른 캐나다라면서.


우리가 토론토를 선택하게 된 이야기를 먼저 해줄게. 이것도 나중에 깨진 환상 목록에 있으니까. 우리 부부는 결혼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어. 2년쯤 살았지. 나도 남편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와봐서 미국이 막 무섭고 낯설지는 않았어. 먹고사는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 타향살이에 무슨 큰 고난과 역경이 있었겠어. 그런데 마지막 학기에 작은 일이 터졌지. 남편이 너무 심하게 인종차별을 겪은 거야. 그 모멸감에 벌겋게 달아오른 남편의 핏대 선 목덜미가 아직도 기억나. 우린 미국에 정이 똑 떨어졌어. 우리가 살 곳이 못된다 결론짓고, 미국 취업이 어렵지 않았는데도 졸업과 동시에 그냥 한국으로 돌아왔어. 그래서 우리 선택지엔 미국이 없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캐나다로 정하게 된 거였어. 사돈에 팔촌까지 다 뒤져도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그 땅으로. 대신 아는 것도 없이 대학은 미국으로 가고 싶다는 큰 애가 공부하기에는 서부보다 동부가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밴쿠버가 아닌 토론토로 결정하게 된 거야. 그때 우린 토론토가 그렇게 추운 줄도 몰랐어.


미국은 멜팅팟이지만 캐나다는 패치워크라니 괜찮을 거라고. 아이들이 한국인이라서 상처받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상도 그런 어리숙한 환상은 없었더라. 몰라도 너무 몰랐지. 캐나다만큼 끼리끼리 문화가 당연한 곳이 또 있을까? 언젠가부터 한국 사람들에게 캐나다로 오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어. 머릿수가 힘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껴서.


유학이라는 카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인종차별이 당연하다는 생각부터 연습해. 출신이 다른 사람들을 한 살로 받아주는 사회는 없더라. 캐나다에서 우리의 위치는 한국에 온 베트남 가족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 (비하의 의도는 절대 없어. 성실하지만 우리보단 경제력이 뒤쳐지는 나라를 떠올린 거야.)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인지 북인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어. 문화의 힘으로 지금은 그 위치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전반적인 인식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 중국의 한 부분 같은 나라. 딱 거기까지였어. (캐나다에선 음력설을 대부분 Chinese New year라고 부르는데, 우리도 음력설을 쇠니까 한국이 중국에서 떨어져 나온 국가인 줄 아는 아이들도 많더라고.) 의도한, 혹은 모르고 하는 인종차별을 언제든 내 아이도 겪을 수 있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소리고, 그 상처가 아이의 자존감을 흔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우리 아이들이 그랬거든. 다른 건 다른 거라고, 우월과 열등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단히 교육하고 가야 해. 그래야 예상에도 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인종차별을 겪더라도 아이가 주눅 들거나 분노하지 않을 수 있고, 나아가서는 인종차별을 스스럼없이 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 테니까.


인종차별 이야기는 또 할 기회가 있을 거야. 다음엔 토론토에서 5학년, 9학년으로 시작한 아이들 학교 이야기를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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