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여러 제목으로 손을 모으고 기도하게 되잖아. 건강한 아이로 태어나기를, 아프지 않기를, 이런저런 사고를 당하지 않기를. 그러던 간절함에 어느 순간부터 나의 욕심이 붙지. 공부를 잘했으면, 시험을 잘 봤으면, 인기가 있었으면, 차분했으면, 성실했으면, 사춘기가 예쁘게 왔으면, 정리정돈을 잘했으면, 등등.
그런 부수적인 바람들을 순식간에 몰아내는 사건이 바로 왕따일 거야. 잠에서 깨기만 하면 사라지는 한낱 악몽이기를 바라는, 그렇게 나의 모든 행동이 가로막히는 질식 같은 경험. 왕따가 현실이 되기 전까지, 나 역시 다른 부모들처럼 그저 남의 일, 뭔가 원인이 있어서 겪는 일이라 생각했어. 잘못하는 일이 없는데, 못된 의도가 없는데, 내 아이가 왕따를 당할 리가 없다 믿었지.
'다름'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귀찮을 수 있는 배려를 기대했던 것. 우리의 어수룩한 착각이었지. 아이들은 너무 달랐어. 우선 자기들만의 은어가 너무 많았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 '김현아' 같은 줄임말이 대부분인 아이들의 대화에 큰 아이는 새하얗게 질린 채로 집에 돌아왔어. 선생님 말씀을 이해하기도 벅찬 큰 아이, 아직 영어보단 몸짓과 표정에 의존하던 작은 아이에게 천천히, 친절하게, 매번 자기들의 언어를 풀어주고 기다려주는 십 대가 있을 리가. 무조건 yes를 하다가, 그저 웃다가, 우리 아이들은 오해를 받고 지치고, 그리고는 배제되었어.
여기서 갈리겠구나 싶었지. 만약 두 아이 모두 한국아이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그 친구와 가까이 지내려 모든 노력을 했을 것 같아. 우선은 소통이 되어야 그 다음 단계도 생길 테니까. 지내보면, 특히 대학에 가면, 같은 인종끼리, 같은 나라 출신끼리 모이게 되던데. 한국 학생들이 많았던 학교에 갔더라면 또 다른 시나리오가 던져졌겠지만, 우리에게 그런 옵션은 이미 없었어.
학교 사무실에 서류를 내러 갔다가 마침 recess 시간이라 운동장에 나와있던 둘째 반 아이들을 보게 된 날이었어. 모두 운동장에 나와야 하는 시간, 삼삼오오 모여서 농구도 하고 피구도 하고 그저 뛰어다니며 잡기 놀이도 하는 그런 시간인데. 우리 아이만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멀뚱하니 건물에 기대어 서 있는 거야.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면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존재 같았어. 그 많은 아이들 중 어느 하나 말을 걸거나 눈을 마주쳐주는 아이가 없었지. 심지어 교사도 그냥 당연한 듯 멀리서 보기만 했고. 나는 가슴이 쿵쾅거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어. 허리가 굽어지도록 웃으며 재미있게 공을 주고받으면서도, 우리 아이에겐 절대 그 공을 던져주지 않던 아이들. 아침 등굣길에 만나면 반갑게 허그를 해주던 아이조차 무리들 속에선 다르지 않더라. 혹시나... 하는 기대와 실망이 섞인 내 아이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해.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recess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갔어. 멀리 차를 대고 차 안에서 몰래 우리 아이를 바라보며 응원하고 기도했지. 아이는 절대 내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 "오늘 친구들하고 재미있었어?"라고 물으면 늘 "응."하고 대답하더라. 새털처럼 떨리는 그 얼굴을 내가 매일 보고 있는데도 아이는 그 어려운 시간에 대해 내게 먼저 말하지 않았어.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하루도 편히 앉아있을 수 없던 날들이었지. 포기하고 싶었어. 친구들 사이에서 환하던 내 아이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더 늦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갈까 망설였지. 6개월 단기 유학, 뭐 그런 걸로 치면 되지... 하면서.
아이가 포기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카드를 내밀 수는 없었어. 자기가 정한 계획, 한계, 인내와 노력의 강도가 분명 있었을 테니까. 대신 나는 정말 열심히 도시락을 준비했어. 음식에 관심도, 취미도 없던 내가 음식에 가장 공을 들였던 시기였어. 외국인이 싫어한다는 참기름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 김치와 마늘 냄새가 강하지 않은 음식들로 매일 예쁘게 도시락을 싸줬지. 따로 스시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어. 친구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스시라고 하기에, 매일 넉넉한 양의 스시를 들려 보냈어. 캐나다 아이들도 '한 입만~'을 하더라. 점심시간이 되면 우리 아이에게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 우리 아이와 도시락을 바꿔먹고 싶은 아이들이 생겼지.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아이의 표정이 바뀌던 날이 아직도 기억나. "엄마,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고 싶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