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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야 May 26. 2020

막간) 전할 수 없는 성인ADHD 이야기 ①

나의 상사들에게, 첫번째

나도 나를 몰랐고
당신도 나를 몰랐던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이해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나를 돌봐주는 당신에게



당신은 내가 매우 힘든 1년을 겪은 후 만난 새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당신과 같은 위치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1년간 치열하게 부딪히고 밟히면서 지냈고, 그 결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와도 같았을 것이라고 새삼 생각합니다.


생각을 전하기는 커녕 생각하는 것조차 부정당하고 억압당하는 것, 그리고 나에게 있어 어쩔 수 없는 나의 특성을 무시당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었고, 그 아래의 1년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1년이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수시로 고장이 나 자리에 앉아만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거나, 다종다양한 약기운이 강하게 돌 때면 몽롱함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과 일을 하기 위해 만난 것이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나는 모릅니다.


망설이며 꺼낸 '우울증'이라는 단어, '정신과 치료중'이라는 발언을 그저 덤덤하게 그렇구나, 하고 반응하고 항상 위축되어 불편함도 참고 있는 나에게 그러고 있지 말고 말해라, 그럼 도와주겠다, 그 전에 함께 하던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단호하게 말해준 것은 참 고마웠습니다.


아직, 그 이후 새로이 알게 된 성인ADHD라는 질병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ADHD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우울증임을 밝히는 것보다 어려워요.


아직은, '일'을 함께 하는 처지에 있는 당신에게 말하면, 그것이 나의 일하는 방식이나 부족함에 대한 변명으로 보일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해 말할 기회가 과연 찾아올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확실한 것은 당신은 나에게 '좋은 상사'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가 그저 나에게만 좋은 것인지, 아니면 당신에게 있어서도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기에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좋은 사람'으로 내 기억 속에 쭉 남을 것이고, 나 역시 그런 모습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게 되겠지요.


지금 이 시간에도 당신에게, 나도 최근에야 알게 된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야할지 말아야할지, 알린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렸을 때에 당신의 반응이 어떨지 같은 것을 고민합니다.


약을 먹고 치료를 시작했지만, 내가 이 특성을 안고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인지 나의 미래를 고민하기도 합니다.


나는 실수도 많고 시간 관리도 잘 하지 못하며, 일의 순서를 정리하거나 여러가지 일을 고루 신경 쓰는 것도 잘 하지 못해서, 지금도 이미 당신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저 묵묵하게 도와주면서 내가 일을 더 잘 할수 있도록 끌어주는 당신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더 나아가기 위해 언젠가는, 이것이 비록 당신에게 변명처럼 들릴지라도, 나는 성인 ADHD이며 그 때문에 이러한 특성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해야 할 날이 올 지도 모릅니다.


그 때 당신은 나의 성장을 위해 함께 고민해 줄까요?


사람의 마음이 어려워서 전하지 못합니다.


사실 나와 같은 ADHD나, 기타 여러 정신 질환들을 가지고 있어 어려운 점을 자신과 밀접하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에게 밝히고, 설명하고, 이를 뛰어넘기 위한 협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나처럼 그 과정을 망설이고 두려워하다 끝끝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 뿐이겠죠.


지금도 나는 당신의 돌봄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이 정도면 충분하고, 나의 특성을 알아가는 것은 만약의 사태가 벌어질 확률을 함께 줄이고자 하려는 목적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래서 더 말을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이만큼 돌봐주는 상사가 흔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많을 것이다.

어른에게 요구하는 어른다움에 '흠 없는 능숙한 업무 능력'도 포함이 되는 우리의 사회에는 숨은 ADHD, 우울증, 그 외 여러가지 질환을 가진 성인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을 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것을 깰 수 없다.

깨는 날이 올 지도 알 수 없다.

어디까지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알리고자 하는 것 자체가 투정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이런 나의 특성을 내가 먼저 받아들이고 자신을 긍정하며 사는 방법을 찾겠다고 결심했기에 그러한 생각에 너무 빠져들지 않으려고 한다.


괜찮다, 괜찮다.

조금만 더 신중하게 시간을 들여 생각을 정리하면 나에게 더 나은 방향이 무엇일지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급하게 먹거나 초조해하는 것 또한 성인 ADHD의 증상 중 하나이며, 그것이 더 나아가면 정리 되지 못한 말과 행동으로 실수를 만들게 된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공부했고, 알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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