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앞 동네 마당, 할머니들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계절
길을 걷다 멈춰 섰다. 동네 구석, 낮은 벽돌집 앞마당에서 할머니 다섯 분이 파란 대야를 둘러싸고 앉아 계셨다. 초겨울 햇빛이 어깨 위로 쏟아지는 오전이었다. 김장철이 온 것이다.
누군가는 무를 썰고, 누군가는 고춧가루를 버무리고, 또 누군가는 옆에서 속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소리가 마당을 채웠다. 웃음소리, 칼질 소리, 대야 부딪히는 소리. 나는 그 앞을 지나치지 못하고 골목 모퉁이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그저 '아, 김장하네' 싶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건 단순한 김치 담그기가 아니었다. 할머니들은 일하면서도 계속 말을 주고받았다. 손은 배추를 다듬고 있지만, 시선은 서로를 향했다. 가끔 누가 한마디 던지면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손은 멈추지 않는데, 표정만큼은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녹슨 철제 프레임에 씌워진 천막, 그 아래 나란히 놓인 플라스틱 의자들. 화분이 나뒹굴던 자리가 오늘만큼은 작업장이 되어 있었다. 바닥엔 물이 흥건하고, 빨간 고춧가루가 여기저기 흩날렸다. 손에 낀 비닐장갑마다 배추 물이 배어 있었다. 어수선한데, 묘하게 질서가 느껴졌다.
누군가는 절인 배추를 씻었고, 누군가는 속 재료를 버무렸고, 또 누군가는 다 담긴 김치를 정리했다. 분업이 자연스러웠다. 말 한마디 없이도 서로의 리듬을 아는 듯했다. 오래 함께 산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호흡. 나는 그것이 부러웠다.
골목 끝 카페에서 잠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그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요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일하고, 혼자 걷는다. 그게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김장을 하는 모습이 왠지 먹먹하게 다가왔다.
그건 단지 김치를 담그는 장면이 아니었다. 함께 손을 움직이고, 함께 투덜대고, 함께 수육을 집어 먹는 시간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 모였다. 마당 한쪽엔 냄비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할머니 한 분이 수육을 건져 접시에 담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마다 한 점씩 집어 들었다.
일하는 중에 먹는 음식. 그게 참 좋아 보였다.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함께 있어서 먹는 것. 나는 언제 그런 밥을 먹어봤던가. 손에 배추국물이 묻은 채로, 웃으면서 고기를 집어 먹는 그 시간이, 어쩌면 누군가에겐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그 골목을 지날 때쯤, 마당엔 김치를 담은 커다란 용기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할머니들은 여전히 앉아 계셨지만, 이제는 손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는 물을 마셨다. 햇빛은 기울고, 그림자는 길어졌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마음속엔 뭔가가 남았다. 오늘 본 장면은, 내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건드렸다. 사람은 혼자서도 살 수 있지만,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것. 일이 고되어도, 옆에 누가 있으면 그게 노동이 아니라 시간이 된다는 것.
김장은 춥기 전에 해야 한다. 날이 너무 추우면 버무리기 힘들고, 너무 따뜻하면 금방 시어버린다. 김장은 어떤 의미에서 계절과의 타협이다. 자연의 시간표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일. 그게 김장이고, 그게 동네였다.
나는 그 마당을 떠나면서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 손을 움직이면서도 웃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그 물음이 발걸음을 따라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았다. 파란 대야, 빨간 고춧가루, 할머니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냄비 속 수육. 그것들이 모여서 만든 하나의 풍경. 나는 그게 그리웠다.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그 온도만큼은 분명히 느껴졌다.
겨울이 오기 전, 사람들은 이렇게 모인다. 김장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먹는다. 그리고 그 김치를 먹으며 긴 겨울을 견딘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서로 확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