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끝에서

하루가 남긴 작은 평온에 대하여



하루의 끝은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그 자리에 앉은 마음은 매일 다르다.



오늘은 유난히 피곤한 날이었다.

아침 회의가 길었고, 점심은 책상에서 대충 해결했다.

오후엔 예상치 못한 일이 들어왔고,

퇴근길 지하철은 붐볐다.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는 순간, 비로소 몸의 무게가 느껴진다.


창밖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낮 동안 떠돌던 소음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사람들의 발걸음, 멀어지는 차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저녁 준비 소리.

그 모든 것이 오늘의 끝을 알린다.


책상 위에는 미지근한 커피가 남아 있다.

아침에 내린 그 한 잔.

손끝으로 그 온도를 느끼며 생각한다.

“이 하루도 무사히 지나왔구나.”

별일 없이 흘러간 날.

특별하지 않은 순간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채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이웃의 인사,

편의점에서 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

점심시간에 올려다본 하늘.

단조롭던 일상 속 작은 풍경들이

시간이 지나면 가장 그리운 장면이 된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안다.


소파에 몸을 기댄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스민다.

그 바람이 오늘의 열기를 식힌다.

걱정들은 서서히 자리를 비운다.

내일의 일정, 마감, 전화 한 통 —

지금은 잠시 내려놓기로 한다.


스탠드 불빛이 방 안을 채운다.

그 빛 속에서 나는 오늘을 한 장씩 접는다.

아침의 서두름, 낮의 분주함, 저녁의 피곤함.

누군가의 말 한마디, 짧은 웃음,

잠깐의 짜증과 후회까지.

모두 다 나의 하루였다.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작은 실수도 했고, 참지 못한 말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그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는,

살아 있다는 증거들이니까.


책상 서랍에서 낡은 노트를 꺼내든다.

‘고맙다, 조금 피곤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짧은 문장 속에 오늘의 나를 담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좋다.

이건 나를 위한 기록이니까.


창가에 서서 불빛을 본다.

맞은편 아파트에도 하나둘 불이 켜져 있다.

누군가는 저녁을 먹고,

누군가는 아이를 재우고,

누군가는 조용히 책을 읽고 있겠지.

그 모두가 자기 하루를 정리하고 있다.


하루의 끝은 고요하다.

하지만 그 고요 속엔 수많은 감정의 잔향이 섞여 있다.

누군가는 그 속에서 울고,

누군가는 웃는다.

나는 그저 조용히 숨을 고른다.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쉰다.

몸의 긴장이 조금씩 풀린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하루의 무게가 물과 함께 흘러내린다.

거울 속 얼굴은 조금 피곤하지만 괜찮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괜찮아질 것이다.


이불을 덮고 누운다.

커튼 사이로 달빛이 스며든다.

그 빛이 방 안에 내려앉는다.

시간이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수고했어, 나.”


그 한마디가 마음 안에서 잔잔히 번진다.

대단한 일을 해내지 않아도,

누구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그저 하루를 견뎌낸 나에게.


끝이라는 말이 전부는 아니다.

조용히 닫힌 문 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아침이 기다리고 있다.


잘 자라, 오늘.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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