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길은 우회해야만 한다

—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길에서 배운 것



늘 걷던 길이었다.

회사와 다리를 잇는 익숙한 보도블록.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을 만큼 뻔하고 편한 경로.


효율적이고, 빠르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나는 언제나 그 길만을 고집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늘 열려 있던 길의 한쪽이 공사로 막혀 있었다.


‘우회하시오.’


짧은 표지판 하나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 예상치 못한 짜증이 일었다.


익숙함을 벗어나야 한다는 건 언제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 같은 조급함이 발끝에 맴돌았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결국 낯선 방향으로 발을 틀었다.



새로운 길은 좁은 골목으로 이어졌다.

낮은 담벼락, 오래된 상가들, 바람에 흔들리는 간판들.


도심 한가운데인데도

시간이 조금 천천히 흐르는 듯한 고요가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걸음의 속도를 늦췄다.

달릴 필요도,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달릴 수 없는 길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는 늘 가장 빠른 ‘직선’을 원한다.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길만을 찾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장애물은

우리를 낯선 우회로로 이끈다.


그동안 나는 그 우회로를

실패나 낭비로만 여겨왔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조용한 골목을 걸으며 알게 됐다.

때로는 이런 낯선 길에서야

비로소 내 걸음이 느려지고,

내 시선이 넓어지고,

내 마음이 주변을 바라볼 여유를 찾게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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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끝에서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강물의 일부가 보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익숙한 길만 고집했다면

결코 마주할 수 없었던 순간.

낯섦이 주는 작은 선물 같았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우회한다는 것은 목적지에 늦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얻는 일이라는 것을.


가장 멀어 보이는 길이

어쩌면 가장 많은 것을 보여주는 길일지도 모른다.


정답이 없는 골목에서

나는 내 발소리와 바람 소리만을 들었다.

그리고 그 둘만으로도 충분했다.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익숙한 도로에 이르렀을 때

내 마음속에는 새로운 지도가 그려진 듯했다.


시간은 조금 지체되었지만

발걸음은 훨씬 가벼웠다.


그리고 나는 문득,

그 공사 표지판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게 됐다.


어쩌면 그 표지판은

나에게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라고 알려주는

세상의 친절한 알림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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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길만을 좇지 마라. 어떤 길은 우회해야만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면을 보여준다.

— Hyuns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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