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사라지는 것들의 자리

— 흩날리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마음을 찾다



계절이 경계에 서 있었다.

몸은 움직이고 있는데,

공기는 나만 멈춰 선 듯 고요했다.


늦가을의 햇살은 이미 얇아져

따뜻함보다 투명함에 가까웠다.


사무실을 나와 다리 쪽으로 걸어가는 길,

발밑에서 들리는 낙엽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바스락, 바스락—

사라져가는 계절이 들려주는 마지막 숨소리처럼.


어제까지 붉고 노랗던 빛깔들이

오늘은 옅은 갈색으로 바스러져 있었다.


한때 찬란했던 것들이

이렇게 무심하게 땅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사라지는 순간조차 또 다른 의미로 남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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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가장 두텁게 쌓인 벤치에 잠시 앉았다.

벗어져 있던 누군가의 온기를 떠올려보았다.


온기는 이미 사라졌지만

그 순간의 평온만은

아직 이 자리의 공기 속에 배어 있는 듯했다.


우리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것들을 흘려보낸다.


끝났다고 믿었던 관계들,

붙잡고 싶었던 기회들,

지우고 싶었던 후회의 장면들까지.


나는 늘 그것들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밑을 가득 채운 이 낙엽처럼,

사라진 것들이 정말 사라진 걸까.


어쩌면 다른 형태의 잔해로

내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쌓여 있는 건 아닐까.


그때 바람이 불어

벤치 주변의 낙엽들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잠시 떠올랐다가

다시 강물 위, 벤치 아래로 내려앉는 잎들.


그 흩날림을 바라보다 깨달았다.


사라진다는 건 끝이 아니라

흔적의 형태를 바꾸어

다음 자리를 준비하는 일이라는 것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불어도, 낙엽이 흩날려도

하늘과 강물만큼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느낌이 변해도, 색깔이 변해도,

온기가 변해도—


그 모든 변화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만큼은

늘 같은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것들 속에서 안도감을 찾는 일.

그것이 늦가을이 내게 건네는 조용한 가르침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로 돌아가는 길,

뒤를 돌아보니 벤치 주변의 낙엽들이

마치 천천히 나를 배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에 이 길을 걸을 때는

차가운 겨울 공기가 맞이하겠지만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가장 춥고 쓸쓸해 보이는 자리일수록

내 안의 변하지 않는 중심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사라지는 것을 놓아주면, 그 자리에 변하지 않는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 Hyuns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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