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그림자의 고백

— 가장 길어진 시간 속에서 마주한 나



점심시간도, 오후의 분주함도 모두 지나간 시각.

사무실 창밖으로 붉은빛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퇴근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마음은 이미 하루의 끝자락에 와 있었다.


나는 키보드 위의 손을 멈추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공기는 오전보다 한층 차가워져 있었고,

바람은 하루의 피로를 그대로 담아 불어오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회사와 강 사이의 다리로 향했다.

해가 지기 직전, 세상이 가장 드라마틱한 색으로 물드는 순간.

어둠이 오기 전의 그 짧은 찰나를 붙잡고 싶었다.


다리 난간에 기대자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가 발끝 너머까지 이어졌다.

비스듬히 떨어지는 햇빛은

그림자를 실제보다 훨씬 크고 길게 만들었다.


마치 하루 동안 내가 짊어진 무게를

그 그림자가 대신 어깨에 걸친 것처럼 보였다.



평소보다 길어진 그림자 속에서

나는 잠시 동안 솔직해졌다.


오늘 비워내지 못했던 말들,

짧게 스친 후회들,

내일의 과제들이 불러오는 가벼운 불안까지—


모든 감정이 그림자 위에 한 겹씩 쌓여

묵묵한 고백처럼 드리워졌다.


이 시간의 다리는 늘 묘한 경계다.

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내 시간이 되지도 않는 순간.


그 애매한 경계 위에 서면

일상의 모든 시선에서 잠시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멀리 자동차 소리가 흐르고,

발 아래 강물은 잔잔하게 부딪히며 이어졌다.

그 속에서 나는 오직 내 그림자와만 대화를 나눴다.


그림자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하다가

조용히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괜찮다.

오늘은 너의 하루였다.”



해는 점점 더 기울었고

붉은빛은 금세 어두운 청색에 잠겨갔다.


그림자 역시 길고 크던 모습을 내려놓고

천천히 땅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그 순간, 문득 가벼움이 찾아왔다.

마치 그림자가 내게서 하루의 무게를 가져가고

대신 빈자리만 남겨준 것 같았다.


나는 뒤돌아 회사 건물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사무실은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발걸음은 서두르지 않았다.


어둠이 오는 건 끝이 아니라,

내일의 빛이 오기 전의 가장 완벽한 쉼표라는 걸

나는 방금 전, 내 그림자에게서 배웠으니까.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차가운 저녁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오늘의 고백은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가벼워진 마음으로

내일의 길을 걸을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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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가장 길어지는 순간은, 내일의 빛이 가장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 Hyuns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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