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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May 20. 2024

이사를 가려다 말고 중문을 달았다

이렇게 예쁠 줄 몰랐지

"진짜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네."


몇 번이나 시도했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집은 하늘이 정해 준 인연이라고 했던가. 정말 쉽지가 않았다.


한 부동산 아주머니는 집이 곧 나갈 것 같다며 우리에게 500만 원만 깎아 달라고 했다. 큰 맘을 먹고 부동산 복 비를 대신 내준다는 마음으로 500을 내렸다. 시세보다 500이 싸다는 건 큰 효과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고, 우리는 사람들이 올 때마다 집을 깨끗이 치워두고 그들을 맞이했다. 20번째쯤 되었을까 드디어 그린라이트가 켜졌다. 


"여보세요~ 부동산인데요. 정말 인연이라는 게 있나 봐요. 오늘 집을 보신 분들이 집을 계약하고 싶으시다네요. 그런데요...."


그린라이트는 켜졌지만 막상 집을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몇 천을 깎아 달라고 했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몇 천 까진 중개업자인 본인이 봐도 어렵고 500만 더 깎아달라고 했다. 속이 쓰렸지만 들어가고 싶은 집이 있기에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몇 천을 깎아달라던 사람은 결국 우리 집보다 덜 마음에 들어 한 다른 집을 더 싸다는 이유로 계약했다고 했다. 멍했다.


"이제 그만하자."


우리 집은 참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평형 대비 널찍하게 빠진 구조도 그렇고, 학교가 가까워 아이가 길을 건너지 않고 통학할 수 있다는 점도, 숲이 가까이 있어 공기가 참 좋다는 점도 그랬다. 이런 많은 좋은 점들에도 불구하고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로서는 회사에서 먼 거리가 큰 단점으로 다가왔다. 입주할 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이 집은 곧 팔게 될 집'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어차피 떠날 집이니 돈을 많이 들이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다른 집들은 대부분 선택했던 시스템에어컨이나 중문 같은 옵션들을 선택하지 않은 채 입주하게 되었다.


집과의 인연이 이렇게 깊어질 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끊으려고 하면 쉽게 끊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막상 년을 살아가야 집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지금까지 집빨리 생각만 했지 집에서 생각을 많이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집에 들어올 때의 나는 미래만 생각하고 현재를 중요시했던 같다. 지금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지금을 사는 건, 결국 미래의 내가 사는 방법이다.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왕 이렇게 지금의 집에서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싶었다.


사실 마음으로는 에어컨을 달고 싶었다. 하지만 비용도 비용이지만 살다가 에어컨 공사를 했던 사람들이 너무 큰 공사 규모와 먼지에 혀를 내두르는 걸 보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남편이 에어컨은 너무 일이 크니 중문을 다는 건 어떻냐고 이야기를 해왔다. 중문만 달아도 겨울에 외풍을 막고 소음도 좀 적어질 거라고 했다. 시간을 들여 인터넷으로 중문 업체를 수소문하고, 업체에 연락을 상담을 받았다. 요즘 유행하는 깔끔한 디자인의 중문을 골랐다. 시공 실측을 하고 얼마가 되는 크다면 큰돈을 부쳤다. 마지막으로 중문 업체 시공 팀장님이 우리 집에 와서 중문을 하고 달아주셨다.


'예쁘다! 진짜 예쁘다.'


이렇게 예쁠 줄 몰랐다.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아니. 아니다. 처음부터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었더라면 오히려 못 느꼈을 수도 있는 행복함과 뿌듯함이었을 거다. 집이 달라 보였다. 더 예쁘고 소중해 보였다. 집은 그대로였는데 말이다.


조금 늦게 알았지만 그래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지금을 잘 살고 싶다. 잘 살 거다. 중문이 가르쳐 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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