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숙제를 하지 않은 기분

-읽는 라디오

by 하쿠나 마타타

오프닝

방학 동안 열심히 놀다 개학날을 3일 앞두고 밀린 숙제를 몰아서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일기의 날씨는 꾸며 쓸 수 없기에 매일 일기장에 날씨만 동그라미 쳐놨던 기억이 있습니다. 밀린 숙제를 할 때면 '정말 하기 싫다'는 생각과 '미리 해둘 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했었는데 나이를 먹어도 밀린 숙제를 하는 것처럼 몰아서 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하기 싫다는 마음과 미리 해 둘 걸이라는 마음은 여전히 같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게 성격인가 봅니다.



음악

-크루셜스타 (밀린 일)

[M/V] Crucial Star (크루셜스타) - 밀린 일 (Work To Do)



사연

연말이라는 핑계를 대봅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걸.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데도 하고 있지 않는 이유는 연말이라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핑계입니다.

지금 당장 하지 않더라도 괜찮은 것들은 미루고 있습니다.


바닥에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면서 오래된 책을 정리하고 꽂아야 할지, 새 책장을 사야 할지 고민만 한지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쌓인 책들의 높이가 높아져 갈수록 불편한 제 마음도 커져 갑니다. 보지 않는 책들은 기증을 하거나 알라딘에 가서 팔면 되는데 그런 책들을 선별하기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시간은 많습니다. 대신 일을 할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해야 하는데 하고 있지 않는 숙제를 보는 기분과 같습니다.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큰일은 나지 않지만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저 답답하기만 합니다.


내 돈 주고 산책보다는 선물 받은 책들이 많고, 작가의 친필 사인이 되어 있는 책들은 보지도 않으면서 기증하기도 팔기도 아깝습니다. 이런 결정하는 것부터가 저에게는 괴로운 일입니다. 한 때는 책을 수집하다 싶을 정도로 책을 샀지만 지금은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지만, 제가 다른 분들에게 책 선물을 많이 하다 보니 저도 선물로 가장 많이 받는 것이 책입니다. 그렇게 쌓인 책들은 그대로인데 제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 보면 책에 파묻혀 살기를 희망했는데 그렇게 살고 있구나 싶어서 행복하고,

심란할 때 보면 정리 안된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합니다.


자기 전에 누워서 회전책장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이동식 책장도 검색해 보고 후기를 찾아보고 가격비교까지 하다 결국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날도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내일은 꼭 결정하자고 다짐하고 잠들지만 여전히 결정을 유예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할 결정이기에 누구에게도 부탁할 수 없습니다. 30년 전 방학 동안 밀린 일기를 써야 하는 초등학생과 같은 위치입니다. 만들기는 엄마가 도와주실 수 있지만 일기는 제가 힘주어 꾹꾹 눌러써야 했습니다. 지금의 상황과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30년을 더 살았으면서도 달라진 게 없다 생각하니 서글펐습니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삶을 꿈꾸는데 정말 꿈만 꾼 거 같습니다. 나아진 게 없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별거 아닌 일에 신경을 쓰는 걸 보니 마음이 불편하긴 한가 봅니다. 시간의 연속성으로 날짜만 바뀌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해가 바뀐다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지고, 그로 인해 신경을 쓰게 됩니다.


글을 쓰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책들을 기증하고,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보내주어야 할 책을 선별할지, 전부터 검색해 봤던 회전 책장을 주문할지를 결정부터 해야 하기에. 쓰다 보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결정을 못 했습니다. 상황 나열에 집중을 했나 봅니다.

밀린 숙제를 하지 않은 마음은 해결되지 않은 채 오늘도 쌓인 책들을 바라봅니다.



음악

-태연 (만약에)

태연 (Taeyeon) - 만약에 (If) [Kor - Eng Lyrics by AlpaKa]



클로징

딱 오늘까지만 고민하고 내일은 정말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해줄 수 없다는 걸 아니까요. 이 숙제는 나만 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더 이상은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압니다.

오늘도 수고 많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큰 행복을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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