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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마타타 Jun 12. 2023

아빠 대신 시아버지

-행복 총량의 법칙


아침 7시, 요란스럽게 전화벨이 울린다.

발신자는 아버님, 아빠가 아닌 아버님.

급하게 받으니

"아이고, 우리 며느리 생일 축하한다."

마흔 넘은 며느리의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전화를 손수 거셨다.

아빠한테도 못 받은 내 생일을 시아버님이 먼저 축하해 주신다.

이런 분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새삼스럽게 마음은 울컥한다.

"오늘 하루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것만 먹어라.

 그리고 우리 며느리 예쁘게 낳고 키워서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어머님, 아버님께도 꼭 전해드려라.

 어제 엄마가 보낸  돈으로 아들이랑 OO이랑 아끼지 말고 맛있는 거 사 먹고 며느리 사고 싶은 거 사라."

라는 따뜻한 말을 전하고는 끊으셨다.


안 그래도 어제 어머님께서 통장으로 큰돈을 보내 주셨다.

생일인데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그리고 남편이랑 딸 위해서 쓰지 말고 내가 사고 싶었던 거 사라고.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아버님께서 제일 먼저 전화로 생일을 축하해 주셨다.


아직 우리 친정아빠에게는 전화나 문자 한 통이 없다.

아직이 아니다. 오늘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아빠의 연락은 없을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우리 아빠는 그런 분이시다.

세상 둘도 없이 무뚝뚝한 분.

자식도 속으로 예뻐해야 한다는 굳은 신념으로 오빠와 나를 키우셨다.

묵묵히 아빠의 자리를 지키시면서 엄한 아빠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살아가고 계신다.


그런 아빠 대신 세상 다정한 시아버님이 계신다.

아들보다 더 믿어주시고, 늘 딸처럼 대해 주시는 시아버님.

사실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것도 이런 시아버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아버님이고, 아버님처럼 사는 게 목표라고 늘 말하던 연애시절,

남편의 통사정에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밥을 먹는 자리에서 통전복이 4개가 나와 있었다.

내가 보고 자란 광경은 엄마가 먹기 좋게 손질하고 아빠가 드시는 것인데

그날 나는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했다.

아버님께서 전복을 하나 가지고 가시더니 손질 후 어머님 앞접시에 놓아주시는 것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라 충격이 커서 몸이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리고 난 뒤 다시 집으신 전복을 내 앞접시에 놓아주신 것이다.

당신도, 당신의 아들도 아닌, 난생처음 본 아들이 데려온 여자 친구에게.

내 앞에 놓은 전복을 보고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졌다.

나를 제외한 모두 당황한 그 상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머님 앞에 놓인 첫 번째 전복을 보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다.

아들은 못난 아버지를 욕하면서 닮는다고 하는데,

내 옆에 있는 아들은 세상에서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고

아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아버지는 내가 평생 꿈꾸던 다정한 아빠의 모습으로 내 눈앞에 계신다.


결혼한 지 햇수로 12년째인데,

아버님의 며느리 사랑은 여전히 넘치신다.

남편에게 들은 말로는 아버님이 누나를 그렇게 아끼고, 예뻐하시며 키웠는데

지금 나를 누나처럼 대해주신다고.

친 딸이 아니라서 조금 조심스럽게 대해주시긴 하지만 아끼시는 마음은 같다고.


낳아주신 아빠에게도 못 받아본 사랑을 결혼하고 시아버님께 받고 있다.

아들보다 더 믿어주시고, 며느리가 하는 말이 다 맞다고 지지해 주시고,

당신 아들이랑 결혼해서 잘 살아줘서 고맙다,

우리 OO이 예쁘고 똑똑하게 잘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시는

시아버님이 계신다.


우리 딸은 할아버지를 닮은 아빠 밑에서 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래도 이런 시아버님을 만나기를 욕심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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