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옷을 10년 이상 입는 이유
-이번에는 새 옷을 사고야 말겠다
키 170cm, 몸무게 54kg
수치상으로만 보면 마른 몸매에 속한다.
살을 빼고 싶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보고 뺄 살이 어디 있냐고 한다.
옷 속에 가려진 나의 지방덩어리를 보지 않고 나를 질책한다.
하지만 정말 억울하다.
지금 당장 다이어트가 시급한 사람인데 말이다.
마른 비만이다. 그것도 고도의 마른 비만.
근육량은 기준에 한 참 미달이며, 체지방은 엄청나다.
인바디 해주시는 분께서
“사람이 죽지 않고 걸어 다닐 정도의 근육을 가지고 있고, 이 정도의 키와 몸무게에서 체지방률이 이렇게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라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먹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소화능력이 좋지 않아서 많이 먹고 소화제를 달고 산다.
그리고 운동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먹고 싶은 욕심을 누르고 또 누른다. 양껏 먹으면 살이 찔 테고 그럼 내가 하기 싫은 운동을 해야 하니깐 양을 줄이는 걸 택했다.
이래서 소화제를 달고 사나 보다. 마음 편히 먹지 못하니깐.
임신했을 때도 다른 게 아닌 빵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그때도 양껏 먹지 못했다.
임산부가 살이 찌면 임산부보다 태아가 더 힘들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못된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단팥빵을 이틀에 하나를 나누어 먹었다.
남편이 임산부가 다이어트하는 건 처음 본다고 먹고 싶을 때 합법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게 임신 중 아니냐며 빵을 한 아름 사다 안겼다.
그런 남편이 미웠다.
보면 먹고 싶은데, 먹고 싶은 걸 참는 게 얼마나 힘든데.
이를 악물고 참고 견뎌서 만삭 때도 9kg 밖에 늘지 않았다.
병원 검진을 갈 때도 아이가 보통 아이보다 큰 데 산모님 몸무게는 계속 빠지고 있다고, 그러면 나중에 힘없어서 자연분만을 못한다고 담당 선생님이 먹고 싶은 거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남의 속도 모르고.
담당 선생님의 걱정과 달리 4시간의 진통 끝에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출산 3일째 되는 날에 9kg가 전부 빠지고 다시 54kg로 돌아왔다.
임신 중과 출산 이틀째까지를 제외하면
키와 몸무게는 중학교 1학년 때 이후 변함이 없다.
키도 몸무게도 변함이 없어서 옷을 새로 구매할 일이 없다.
급격하게 살이 찌거나 빠지지 않아서 늘 같은 옷을 입는다.
패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옷은 뭐든 입고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늘 편하고 튀지 않는 무채색의 옷 사면 10년은 거뜬히 입는다.
무채색은 언제나 유행을 타지 않으니깐.
내 옷장에는 10년이 훌쩍 넘은 옷들이 가득하다.
임신했을 때도 배만 나와서 옷장에 있던 넉넉한 내 옷을 만삭 때까지 입었다.
옷을 얼마나 사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안 입는 옷을 챙겨 준다.
시누이나 올케 언니가 입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산 옷이 작으면 나에게로 온다.
친정 엄마나 시어머님은 당신들의 옷을 사러 가자고 데리고 가서 따라다니느라 수고했다고 한 벌씩 사 주시는 걸로 새 옷이 생기는 상황도 종종 있다.
그래서 내 의류 소비금액은 몇 년째 0원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가 생일 선물해준 반팔티를 마흔이 넘은 시점에도 입는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못한다.
하지만 사실이다.
옷이 낡지도 해지지도 않고, 구멍도 안 났기에 버릴 이유는 없다.
그래서 매년 여름 집에서 입고 있다.
얼마 전 샤워를 하고 나와서 내 몸을 봤다.
말 그래도 흉측했다.
가슴은 껌딱지고, 뱃살은 늘어져 있었고, 허벅지 뒤에는 셀룰라이트가 심했다.
내가 제일 혐오하는 몸매였다.
자기 관리하지 않고 방치해둔 전형적인 몸매.
혼자였는데도 그 민망함을 감추려고 옷을 입으려고 옷장을 열었다.
하나같이 펑퍼짐한 옷들뿐이었다. 이러니 내 몸이 이지경이 되도록 몰랐지 싶을 정도였다.
몸무게는 늘지 않았고 맞지 않은 옷이 없으니 별생각 없이 살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 나도 마흔이 넘긴 했지만 여자다.
아니,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명언도 있다.
새 옷을 장만해야겠다.
그전에 체지방을 빼고, 근육량을 늘리는 운동이 먼저다.
같은 몸무게여도 체지방이 아닌 근육량이 많은 몸매는 옷태가 다르다.
아파트 헬스장부터 가봐야겠다.
목돈 들여서 PT를 끊을 용기는 아직 없다.
기초체력부터 기르기 시작해서 근력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건 이론상으로 알고 있다.
그 이론을 이번에는 행동으로 옮겨봐야겠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내년 봄에는 새 옷을 장만하는 목표로.
옷장의 무채색의 옷들을 모두 헌 옷 수거함으로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운동하기 편한 옷을 입고 나서보련다.
(사진 출처- https://m.fashionn.com/board/read.php?table=style&number=44123
한소희님의 예쁜 얼굴과 옷을 오마주 한 것일 뿐 상업적인 목적은 없음을 안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