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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마타타 Jan 27. 2023

그래, 가자. 제주도

-누가 보면 유럽 배낭여행이라도 가는 줄.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강풍으로 인해 제주도에서 비행기가 결항되고 있다는 뉴스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래도 나는 가기로 했다.

오늘부터  숙소를 취소하면 환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정말 잘 다녔다. 주변에서는 역마살이 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금요일 저녁이면 짐 싸서 출발했다. 계획해서 가는 곳도 있었고, 계획하지 않고 무작정 출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를 그렇게 다녔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남아있는 사진을 보면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거창하게 해외여행도 아닌데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한다는 이유로 제주도는 아직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우리 집에 있는 초등학생이 제주도를 가자고 몇 년째 조르고 있었는데 애써 외면했다.

금, 토, 일로 다녀오기에는 아쉽고, 그렇다고 각자 하는 일이 있는데 연차나 현장학습을 써서 가는 건 생각이 많아지는 일이다.

내가 교육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아이들 교육에는 보수적인 면이 강하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하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라는 좋은 취지에서 만든 현장학습을 쓰지 못하는 고집 불통이다.

그래서 우리 집 초등학생은 주말마다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전국을 헤매고 다녔는데도 그건 여행이 아닌 일상으로 생각한다.

우리 집 초등학생이 정의한 여행은 현장체험학습계를 내고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라고 한다.

병설 유치원부터 현재까지 친구들이 여행을 갔다고 하면 다들 비행기를 타고 갔다 와야 하기에 결석 이유를 선생님께서 여행 갔다고 말해주신 것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나 보다.


작년부터는 콕 찍어서 제주도에 가자는 소리를 유난히 많이 했다.

친구들이 제주도를 많이 갔다 왔다면서 자기도 가고 싶단다.

그래서 제주도를 가면 뭘 하고 싶은데?라고 물어보니

감귤 초콜릿을 사서 반 아이들에게 돌리고 싶다고 한다.

'단지 감귤 초콜릿이 먹고 싶다면 엄마가 인터넷으로도 사줄 수 있는데

그걸 꼭 제주도 가서 사 와야겠니?'라는 매정한 엄마의 마음의 소리는 넣어두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여기저기 다닌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나는 어릴 적에 엄마, 아빠랑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어.'라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도 다녔다.


그동안은 엄마의 계획으로 아빠가 실행을 해 주어서 수동적을 끌려다니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말도 안 되는 이유지만 가고 싶은 곳을 말한다. 황당하면서도 고맙다.

잘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주도를 가기로 마음을 먹고 알아보는데 많은 것들이 걸린다.

학기 중에 현장체험학습을 내고 가야 하나?

그렇게 되면 남편도 연차를 붙여 써야 하고, 나도 밀린 수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진다.

그럼 쿨하게 패스.

방학으로 결정!!!


남편의 회사가 갑자기 바빠졌다. 그래서 시간을 내기 힘들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럼 설 연휴에 갈까? 그러기에는 같은 코스라도 비용이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번에는 남편이 쿨하게 말한다. 이번에는 둘이만 다녀오라고.

어딜 다니든 간에 늘 셋이 함께 다녔다.

나가면 남편이 다 하는 스타일이기에 둘만 가는 게 솔직히 겁이 나서 많이 고민했다.


나는 내 차로 내 행동반경 외에는 운전을 하지 못한다.

남편이 안 가면 렌트해서 우리가 다니고 싶은 곳을 다닐 수 없다.

버스 투어라는 것도 잘 되어 있다고 한다.

투덜거리지 않고 잘 다니는 아이니까 믿고 가보자.


버스투어라도 코스가 여러 개 있다.

아이와 제주도 관련된 책을 잔뜩 빌려와서 가고 싶은 곳을 찍어봤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이는 제주도에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시큰둥하다.

나보고 가고 싶은 곳을 고르란다. 자기는 초콜릿만 사면 된단다.

초콜릿은 인터넷으로도 살 수 있다고!!!!!

아직 제주도를 보여주지 못한 애미가 미안하구나.


그래서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감귤 따기 체험, 승마, 우도 잠수함만 타고 오자.

큰 계획하에 예약을 했다.

버스 투어를 해야 하니 승하차가 용이한 곳으로 , 아이와 둘이 잠만 자고 짐을 놓은 용도의 저렴한 숙소를 알아봤다.

그게 함께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라 생각했다.


알아보는 와중에 제주항공 티켓이 특가로 떴다.

좋다 좋다 하며 예약을 하니 일사천리로 준비가 되는 기분이었다.


2월 1일부터 2월 4일까지의 제주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을 적어봤다.

당일치기로도 다녀올 수 있는 제주인데 적고 보니 유럽 배낭여행을 준비하는 사람 같은 비장함이 느껴진다.


이번 여행은 큰 의미가 있다.

아이가 가고 싶다는 말에 의해서 준비한 여행이다.

딸과 단둘이 하는 여행인데 3박이나 하고 온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짜인 일정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다닌다.



감귤 초콜릿이 사 오고 싶다는 초등학생이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순간에 엄마는 기상 악화로 비행기 결항 되는 일이 없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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