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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마타타 Jan 20. 2023

둘이여도 외롭습니다

-멀티가 안 돼서 외동을 키워요

"혼자는 외로워서 안돼. 하나 더 낳아."

라는 말을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었다.

아이가 올해로 열 살인데도 어딜 가면 지금도 젊으니깐 둘째를 낳으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내 나이 마흔 하고도 둘인데. 젊다고요?

 지금 둘째를 낳으면 우리 딸이  동생을 키워야 하는데 같이 키워 주실 건가요?'

라는 마음의 소리를 내뱉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결혼 전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할 때는

나는 아이를 좋아하고, 아이는 이쁘니까

능력만 있으면 애는 많이 낳고 싶다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의 이름을 지어가면서.


'결혼 후 신혼은 2년은 즐기고 빠른 생으로 아이를 낳아서 억울하게 나이 먹지 않게 해야지'

라는 야무진 꿈을 꾼 적도 있었다.

그런데 꿈은 꿈이었고,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 말 역시 아무 말 대잔치가 맞았다.




결혼하고 1년은 잘 지냈다. 1년은 더 둘이 보내고 싶었다.

12월 중순에 시댁 증조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했는 제외한 큰 아버님들이 손주를 모두 안고 계시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눈길로 바라보시는 아버님을 보게 되었다.

아이를 누구보다도 예뻐하시는 분이 당신 손주가 없어서 애처롭게 쳐다만 보고 계시던 모습에

뭔가 큰 죄를 짓고 있는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죄책감을 덜고 싶은 마음에

"아버님 손주들 안고 계시던 큰 아버님 부러우셨어요?"라고 여쭈었다.

평소 성품이나 나를 대하시는 모습을 생각했을 때는

"부럽긴 뭐가 부럽냐? 언젠가 생길 텐데."라고 말씀하실 분이셨고, 그걸 들고 싶어서 여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눈치챘냐? 안 봤다고 생각했는데 며느리가 봤구나." 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분명 아니라고 하셔야 하는 게 맞는데.

그래야 우리 계획에 문제가 없는데.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시댁식구들이 좋은 분들이 신데

그런 우리 아버님이  친손주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하셨다.

(이 정도가 직접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나에게 부담 주지 않으신 분이셨다.

그리고 당시 외손녀 둘은 있었지만 아들은 남편뿐이라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어차피 나을 아이 어른들이 원하시니깐 1년 빨리 낳으면 효도하고 좋지 뭐,

라는 마음에 바로 임신을 했다. 그런데 빠른 생은 물 건너간 것이다.

12월 중순이었으니 뱃속에 자리 잡은 게 빠른 1월, 세상에 태어날 시기는 9월.

괜찮아, 효도한 거니깐.




평소 내가 예민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리도 예민한 사람이라는 건 임신을 하고 알았다.

관계 후 1주일 만에 임신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임테기를 해서 두줄이 보이기도 전에 내 몸의 증상으로 알게 되었다.

속은 미식미식거리고, 감기 증상처럼 미열이 나고 있고, 가슴은 콕콕 찌르는 느낌 등등.

남편에게 일주일 만에 나 임신한 거 같다니깐 그걸 벌써 어떻게 아냐? 라며 의심을 했다.

허긴, 남자들에게는 임테기의 두 줄을 보여주면서 임신사실을 알리는 게 보통인데

증거도 없이 1주일 만에 임신을 했다고 하니 나 같아도 안 믿을 수밖에 없을 거 같다.


결국 혼자만의 확신을 갖고 1주일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보여줄 임테기를 형식상으로 했고, 5주 이상 돼야 아기집이 보인다고 해서

5주 넘어서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첫애 맞냐?

첫 애인데 어떻게 임신 사실을 그렇게 빨리 알아차리냐?

그런데 아기집 보려고 늦게 오는 건 어떻게 알고 있냐?"라고

웃으시면서 추궁을 하시는데 듣고 보니 나도 신기하기는 했다.


병원에 다녀온 다음 날부터 죽음의 입덧이 시작됐다.

정확히 6주 접어들면서 12주 차까지, 6주간.

나는 사람의 위가 그렇게 많은 음식물이 들어가는 줄 그때 처음 알았고,

물도 못 마시고 잠도 못 자고, 먹은 것이 없는데도 계속 뭔가 올라올 수 있다는 것 역시 처음 알았다.

170cm의 키에 37Kg이 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6주였다.

12주 이후 빠진 살은 다시 전부 돌아왔고,

원래 내 몸무게에서 최종 9kg 찌고 출산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지금까지의 10년 육아 중 가장 힘들었던 6주였다.




그 이후에는 힘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직까지는.

12주 이후 입덧은 하지 않았고, 출산도 쉽게 하고, 지금까지의 육아는 힘든 것이 없다.

잠도 잘 자고, 이유식도 잘 먹어주는 아이라서 다들 우리 아이 같으면 둘, 셋도 키울 수 있다고들 했다.

그 부분은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둘째, 셋째를 낳을 수 없다.


정말 순하고 예쁜 아이에게 올인하고 싶다. 그래서 하나만 낳기로 했다.

남들은 이쁜 아이가 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면서 둘째를 낳는다고 한다.

나는 멀티가 안된다.

아이가 둘 있으면 지금의 내 우주가 둘째로 옮겨 갈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둘째를 낳을 수 없다.


10살이 된 지금까지도 사랑스러운 마음은 결코 작아지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하루하루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진다.


외동이라고 하면 다들 하나는 외로워서 안된다. 하나 더 낳으라고들 하신다.

"형제가 있어도 외롭고, 결혼을 해서 내 편이 있어도 외로운 게 인생이다.

그러니 이 아이는 외동으로 키우겠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그러나 보통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기에 웃으면서 대답을 피한다.



나 역시 오빠가 있어서, 남편 역시 누나가 있어서 좋았고, 좋다고 한다.

그건 우리 둘이 막내라서 좋을 수 있는 것일 수도.

나도 알고 있다.

형제는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둘째를 낳을 수는 없는 입장이라면

앞, 뒤가 맞지 않는다는 거.

다만 확실한 건 내가 둘째를 낳고 나면 내 우주는 언니나 누나가 되어 원치 않은 동생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게 싫다.



나와 남편이 죽으면 정말 혼자라는 생각에 외동이지만 강하게 키우고 있다.

사랑하는 건 사랑하지만 나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물고기 잡는 법을 확실히 알려주는 게

나의 육아 원칙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아이가 잘 따라주고 있다.



아직 아이의 사춘기도 겪지 않았고, 나의 갱년기도 겪지 않은 시점에서

나와 아이에 관해 말하기는 섣부르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번 생의 우주는 하나면 족하다.


아이를 둘 이상 낳고 키우신 이 세상 모든 분들이 정말 대단한 분들이라고 인정한다.

많은 형제, 자매, 남매를 키우고 계시는 분들은

멀티가 된다는 게 확실하기에 진심으로  존경한다.

 


우리 시어머님께서는 늘 말씀하신다.

"우리 장 씨 하나밖에 없는 거 잘 키워야 한다."

나는 "네"라는 대답대신 속으로 '둘이면 막 키워도 되나요?'라고 혼자 웃지만

멀티가 안 되는 나로서는 막 키울 둘째는 이번 생은 없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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