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세이] 오늘, 하루: This is Life

2022.08.31, 1:18 p.m. / 6:30 p.m.

by 서빈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8월 끝에 다다랐다. 이 달의 끝을 멋지게 매듭지어 완성하고 싶었다. 그러나 숨가쁘게 불태운 삶이라는 실타래는 이젠 고작 짧은 실가닥일 뿐이었고, 짤뚱한 실 끝 매듭을 제대로 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까지는 한 시부터 일곱 시까지 근무하겠다고 영어도서관에 미리 말해두었기에, 나는 부지런히 목적지로 향했다. 배차 간격이 무지막지하게 긴 마을버스를 장장 30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바람에 결국 10분 가량 늦고 말았다. 서둘러 영어도서관이 있는 4층으로 달려갔는데,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안에는 부원장님 한 분밖에 없었고, 책을 담은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부원장님은 나를 보고 되레 왜 왔느냐고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어리둥절한 채 눈만 끔뻑이던 내게 부원장님이 설명했다. 내가 근무하던 지점이 갑자기 폐업하게 되었고, 수업은 어제까지만 했으며, 이 지점은 근처 다른 지점과 통합될 텐데 그곳에서 근무 가능한지는 나중에 사정을 보고 알려준다고 했다.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쉽게 말해, 나는 졸지에 '실업자'가 된 것이다.

부원장님은 이왕 왔으니 짐을 정리하는 것을 좀 도와달라고 청했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으로 일하던 곳에서 이삿짐 정리센터 직원이라도 된 것처럼 플라스틱 박스를 펼쳐 만들고, 그 안에 CD 플레이어와 헤드폰, 아이들 학습 폴더 따위를 차곡차곡 담았다. 이런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어쩐지 어젯밤에 근무자 단톡방에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따위의 인사말이 오가더니만. 그때 눈치껏 무슨 상황인지 다른 근무자에게 물어봤어야 했는데. 나를 제외한 다른 근무자들은 자기들만의 단톡방이 따로 있어서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본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굳이 그 모임에 끼워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었는데, 그 여파가 이런 식으로 찾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부원장님은 얼떨결에 와서 짐꾼이 되어 버린 내게 미안했는지 끝까지 성심성의껏 챙겨주려고 했다. 음료도 시키고, 식사도 같이 하게 맛있는 것 아무거나 골라서 주문하라고 했다. 짬뽕을 골랐더니 비싸고 맛있는 걸 골라야지 웬 짬뽕이냐고 타박을 받았다. 진짜 먹고 싶어서 그런 건데. 결국 부원장님이 탕수육까지 시켰다. 그렇게 나름 호강하며 네 시간을 일한 뒤, 오늘 일한 분만큼 밤까지는 꼭 입금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왔다. 다섯 달간 몸담았던 곳과 그렇게 작별했다.


느닷없이 벌어진 일련의 사건 때문에 어딘가 허무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저녁 때 받기로 한 일일 보컬 레슨에 대한 기대감이 곧 그 마음을 메워 주었다. 보컬 레슨을 받을 연습실이 있는 잠실로 향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길가를 걷다 문득 옆을 돌아보니, 잔잔한 석촌호수가 듬직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버드나무는 푸른 머리칼을 바람에 맡겨 흩날리고, 자그마한 오리 가족은 물살을 유유히 가르며 헤엄쳤다. 평화로웠다. 내가 둘러싼 세상은 어지러웠을지언정, 나를 둘러싼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슬픔이 있으며 기쁨도 있는 법이요, 불행이 있으며 행복도 있는 법이다. Yes, this is life. 이것이 내가 사는 인생이다.



- Bindl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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