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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Mar 21. 2022

2. 여러분의 안식처는 어디인가요?

나와 마주하는 공간

일상이 따분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삶이 팍팍하고 숨이 턱턱 막힐 때, 이곳에서 훌쩍 벗어나고 싶을 때, 여러분은 어디로 가시나요? 나도 모르게 자주 찾는 공간이 있으신가요?


오늘은 안식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5년 전,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생이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언니, 저는 가끔 불을 끄고 샤워해요.” 그녀의 고백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마음에 염증이 생겼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까?’


그녀는 덤덤히 이어서 말했습니다.

“이상하죠? 그런데요. 이 시간이 가장 편안해요.”


언제나 밝고 명랑한 동생이었기에 씩씩하게 잘 지내는 줄 알았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넓은 공간을 두고 한 평 남짓 한 좁고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파본 사람만이 아픔을 잘 느낀다고 합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온전히 아픔을 공감할 수 없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본적인 욕구마저 사라져 버린 시간이 있었습니다. 엄마라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있으면 외롭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이와 둘이서 보내는 시간들은 더디게 흘러갔습니다. 사람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언제인지. 나의 시간은 아이에게 맞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고독한 육아생활은 ‘당연함’에 묻혀 힘들다는 내색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점점 나 자신도 아이가 되어가는 듯 퇴화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났을 때 ‘좋다, 싫다.’ 등 자신을 말로 표현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해, 저는 아이를 첫 사회생활에 내딛게 하였습니다.


온종일 붙어 지내다 아이를 작은 사회 공간으로 보내고 나니 텅 빈 시간이 생겼습니다.

아이의 흔적이 남긴 옷을 벗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후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운동부족으로 몸은 묵직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고작 30분 걸었을 뿐인데. 마음과는 달리 숨이 찼습니다. 소나무 숲 산책로에 놓인 벤치에 앉아 숨을 내쉬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높게 뻗은 짙은 소나무 가지가 청명한 하늘 위에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숨을 고르고 눈을 감았습니다. 지저귀는 새소리, 바람소리, 산책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잔잔히 들렸습니다. 눈을 감고 말없이 한동안 소리에 집중했습니다.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왈칵 눈물이 흘렀습니다.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두 다리를 모아 얼굴을 파묻힌 채, 흐느껴 울었습니다.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이 언제였던지. 성인이 되고 밖에서 울었던 날은 아마 그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흔히 남자들은 가끔 자기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동굴의 필요성이 무엇인지.

동생의 고백을 듣고 시간이 흘러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동굴’이라는 뜻을 알 것 같았습니다.

남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자, 여자, 인간, 또는 동물들도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게 말을 건넨 사람은 바로 내 안의 나였습니다. 그 말은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그곳에서 내 안에 내가 나타납니다. 나에게 속삭입니다.

“잘하고 있어. 넌 지금도 앞으로도 잘할 거야.”라고.

나와 마주할 때 내 안에 있는 가장 많은 에너지가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저는 슬픔이 많았습니다.

해결하지 못한 감정은 묵히면 묵힐수록 감춰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실컷 울고 나니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고,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상적인 꿈과 현실에서 괴리감을 겪을 때마다, 기대한 만큼 실망스러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에이, 기분 풀어, 한잔 할까?” 달콤한 유혹이 나를 붙잡습니다.

세상, 타인, 나 자신을 원망하며 쌓아온 감정을 술로 풀어버립니다.

“한잔 마시고 잊으면 돼.”

마실 때는 좋습니다. 술이 술술 넘어갑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집니다.

잊힙니다. 오늘도 잊고 삽니다.

“내가 오늘부터 술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


이럴 때 떠오르는 문장이 있습니다.


“왜 술을 마셔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잊기 위해서야.” 술 취한 사람이 대답했다.
“뭘 잊고 싶은데요?” 벌써 술 취한 사람이 불쌍해진 어린 왕자가 물었다.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야.” 술 취한 사람이 대답했다.
“뭐가 부끄러운데요?” 그를 돕고 싶었던 어린 왕자가 물었다.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며 술 취한 사람이 털어놓았다.
난처해진 어린 왕자는 그곳을 떠났다.
‘어른들은 정말 너무너무 이상해.’라고 생각하며 어린 왕자는 여행을 계속했다.

- 책 [어린 왕자] 중에서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지만 쌓이는 건 독소뿐, 감정은 혼탁해지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상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면, 오늘부터 우리는 자신만의 비상구를 찾아야 합니다.  


어디든 소방시설이 필요한 건물에 들어서면 “비상구”를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비상구는 사전적 의미로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날 때 급히 대피할 수 있도록 특별히 마련한 출입구를 뜻합니다.


그동안 내 마음을 데리고 사는 나 자신에게는 왜 비상구를 마련해두지 않았을까요?

마음에 사고가 일어났을 때를 대비하여 나에게도 비상구가 있어야 합니다. 갑자기 마음에 허기가 찾아오거나 감정 쓰레기를 제때에 배출하지 못해 위기를 느꼈을 때, 우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환기가 필요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저 멀리 이국적인 곳이나 화려한 곳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나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는 곳. 나에게 맞는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내 마음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안식처라고 부릅니다.

그곳이 집이 될 수도 있고, 놀이터가 될 수도 있고, 바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정해진 장소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5년 전, 슬픔을 고백했던 동생은 살기 위해 대피했습니다. 그곳이 화장실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불 꺼진 어두운 공간에서 흐르는 물에 눈물을 흘려내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한없이 울음을 토해내었던 소나무 숲은 그 이후로 저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남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공간이지만, 제게는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비워내고 다시 채우고, 그렇게 반복하며 내 안에 에너지를 환기하고 순환합니다. 마음에 쌓인 독소가 사라지고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평온해지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마음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면 당장 나를 감싸줄 수 있는 ‘안식처’를 찾아 대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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