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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Jun 15. 2024

안 쓰기를 바란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내 이야기

같다

(형용사)

1. 서로 다르지 않고 하나이다.

2. 다른 것과 비교하여 그것과 다르지 않다.

- 표준국어대사전

(형용사)

1. 체언이나 의존 명사 '것'의 뒤에 쓰여, 추측이나 불확실한 단정을 나타내는 말.

2. 비교하여 유사한 면이 많다.

- 고려대한국어대사전


 '같다'는 사전에서 볼 수 있듯이 ‘서로 다르지 않다’ 혹은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비교적 유사한 면이 많다’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첫 번째 의미에서 나오는 것처럼, 확언하기는 힘들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추측을 나타내는 표현으로도 쓰입니다. 제가 이번에 다루려고 하는 '같다'의 의미는 앞서 말한 추측으로, 생각과 감정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쓰이는 경우에 한정합니다.


 '같다'는 공과 사를 가리지 않고 정말, 너무, 매우, 자주, 빈번히 쓰입니다. '같다'가 많이 쓰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 '다르지 않다는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활용도가 높기 때문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다'를 '서로 다르지 않고 하나이다'라는 의미로 쓰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오히려 시비是非의 대화가 아니라 일상에서 자기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말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하는데 '같다'는 표현을 쓴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느끼는 사람은 본인밖에 없는데, 왜 추측의 의미인 '같다'를 사용할까요.




 이때 사용하는 '같다'의 의미를 짚어보겠습니다. 사전에서 밝히고 있는 '같다'의 의미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동일성 지목'과 '추측'입니다. 문제는 이 두 의미 중 어떤 의미라고 하더라도 '자기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하는데 '같다'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는 것입니다.


 먼저 이때의 '같다'가 '동일성 지목'이라면, '비교 대상이 없어 의미가 성립되지 않음' 혹은 '의미 중복'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선 '비교 대상이 없어 의미가 성립되지 않음'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같다'는 그 의미에서 이미 비교를 내포하기 때문에 두 개 이상의 대상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이나 감정에는 비교 대상이 없습니다.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생각과 네 생각이 같다'는 용례가 존재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는 사례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다른 대상을 끌어오지 않고 순수하게 자기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같다'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비교 대상이 있다고 칩시다. 만약 외부에서 다른 생각이나 감정을 발견하고 '내 것과 이것이 같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같다'의 동일성 지목을 충족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불편하게 설명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상이 없지만 생각과 감정을 좀 더 직접적으로 지목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냐’고 한다면, 이때는 '의미 중복'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갑’을 가리키며 '이것은 갑이다'라고 말할 때, 이미 ‘이것은 갑이다’라는 문장에 포함된 ‘갑’은 지목된 '갑'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이것은 갑인 것 같다'고 말하게 되면, 이미 '갑'과 동일함을 이야기하는 문장에 동일성을 지목하는 ‘같다’가 추가되었으니 의미가 중복됩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같다’는 불필요합니다. 오히려 동일함이 아니라 유사함을 의미한다고 오해할 여지만 생깁니다.



 

 한편 앞서 설명한 '동일성 지목'이 아닌 '추측'의 의미로 ‘같다’가 사용된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문장 구성요소의 불필요한 남발을 넘어, 자기 생각과 감정에 거리를 두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이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추측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만약 정말 자기 생각을 추측하고 있어서 ‘같다’를 통해 이를 표현한다면, 생각의 확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의견의 신뢰도가 낮아집니다. 한편 감정을 추측한다면, 이는 자기감정에 대한 몰이해를 뜻합니다. 당연히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처음 느껴보는 감정, 처음 느껴보는 상황에 대한 감상을 선뜻 설명하기 어려워 '같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이런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같다'는 표현이 비일비재하게 쓰이는 것을 보면 결론적으로 우리는 일상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를 추측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편하지 않은 환경에서 '같다'가 더 자주 사용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는 대외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 조심스럽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생각이 틀렸을까 봐 걱정되고, 자기감정이 지지받지 못할까 봐 말을 흐립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명백하게 존재하는 자기 생각과 감정과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이 현상은 지지를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인 소통 환경이 확보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표현의 기회가 억압되어 분명하게 말하는 경험이 부족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발언에 힘을 뺍니다. 이는 대화는 겉돌게 하고 자기 이해 또한 약화시킵니다.


 '표현의 실패'와 ‘이해의 실패’는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납니다.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 억압되면서 이를 직접 말하지 못하고 돌고 돌아 겨우 이야기하거나 말을 뭉개다 못해 끝내 말하기를 포기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뭉개진 표현은 자신에게 돌아와 자기 생각과 감정을 스스로 바라볼 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말과 태도가 인식에 영향을 미쳐 내적 확신을 떨어뜨립니다. 결국 이 악순환은 자기 생각과 감정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어렵게 만듭니다.


 늘 정답만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실 세상에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문제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강하게 주장을 한다고 해도 언제든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나아가 감정을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나약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은 나눌수록 더 건강해지고 자기 이해는 높아집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는 틀림을 이해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소통 환경을 경험한 일이 많지 않습니다. 이는 결국 ‘같다’가 있어야 문장을 끝맺을 수 있는 습관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확실한 이해와 애매모호한 발화의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분명한 말하기를 통해 언어를 선명하고 날카롭게 다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분명한 언어와 표현 없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 같다'라고 말하는 대신 '그렇다'고 말하는 노력을 통해 발화와 자신의 거리를 없애는 대화를 지향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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