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봉주 Oct 12. 2021

억겁億劫의 빛

정윤경 개인전《FINGER SPELL》

 지구가 해를 한 바퀴 돌아 년年,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월月, 해가 뜨고 지며 일日. 지구를 가장 밝게 비추는 두 개 천체인 해와 달로 우리는 시간時間을 말합니다(시간時間에도 각각 해日가 있습니다). 시간을 빛의 천체로 가늠하고, 빛의 양으로 큰 시간을 작게 나누기 시작했고, 빛으로 생기는 여러 현상에 따라 굵직한 시간의 구분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빛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굳이 짚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시간과 빛의 관계를 짚어보면서, 시간과 빛은 아주 같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이 맥락에서 보면, '시간이 쌓인다'는 것은 그만큼의 '빛이 쌓인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겹겹이 쌓인 시간, 그만큼의 '시간의 겹'들은 그만큼의 '빛의 겹'입니다. 해와 달에 의해 하늘에서부터 내리쬐어진 빛은, 시간의 자국 구석구석에 남고, 그 흔적에 가득 담깁니다. 우리는 그 흔적에 집중할 때, 그 유구한 시간의 깊이에서부터 뿜어져 올라오는 빛을 느낍니다. 위에서부터 쏟아지는 빛이 아니라 빛을 받아오기만 한 곳에서 극렬히 솟구쳐 오르는 빛입니다. 빛의 천체가 내리는 빛을 단순히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켜켜이 응집되어 있던 시간이, 그 자체로 발하는 빛입니다.




정윤경, Finger Spell II(왼쪽) Finger Spell I(오른쪽), 2020,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90x160cm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폭 위에서 춤추는 형광의 흔적입니다. 번쩍번쩍하게 그어진 획들은 화폭 전체를 망설임 없이 누빕니다. 그 획을 쫓아가다 보면, 획의 앞과 뒤에 놓인 또 다른 많은 획을 발견합니다. 질감도 다양합니다. 부드러워 따듯하기도 하고, 같은 패턴을 반복하기도 하며, 매끈하게 미끄러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리다 문득, 다양한 획들을 가득 끌어안고 있는 드넓은 화폭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윤경 작가님의 화폭은 유독 거대한 바위 같습니다. 다채롭고, 형형색색의 획들이 가진 서사와 맥락을 감당할 수 있는 품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사와 맥락은 각각 길고 깊은 이야기를 가집니다. 즉, 서사와 맥락은 각각 아주 큰 시간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름드리 화폭은 단순히 거대한 바위에 머물 수 없습니다. 캔버스의 진짜 크기는 많은 시간이 담긴 서사와 맥락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유구한 시간을 거친 아주 거대한 바위산의 깎아지른 절벽은 되어야 설명할 수 있는 크기일 것입니다.  


 까마득한 시간을 가진 바위산의 절벽 위를 춤추는 수많은 획들. 그리고 그 획이 발發하는 각자의 빛. 거대한 바위 위를 흐르고, 그 위에 부딪히고, 그 위에 쌓인 빛은 이 바위산이 겪어온 시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바위는 그 시간으로 빛납니다. 언뜻 아무 규칙도, 패턴도 없어 보여 중구난방으로 뻗어있는 것 같은 모양이지만, 그 획들의 빛은 그 빛이 쌓인 시간의 맥락에서 바위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정윤경, Pillowman II, 2019, Acrylic and on unprimed canvas, 150x190cm


 정윤경 작가님의 화폭에 놓인 다양한 '시간' 중에서, '역동力動적'으로 그어지며 번쩍이는 것이 시간과 빛을 남기며 '고정된 것'이고, 그 곁에 규칙적인 작은 것들이 '동動적이고 생명력을 가진 것'들이라고 느낍니다. 작품 <Pillowman II>에 한가운데 놓인 분홍색 기둥은 웅장한 폭포 같기도 하고, 거대한 나무 기둥 같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폭포와 거목 모두, 공통적으로 '크게 빛나는 시간성'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분홍색 기둥은 '빛의 기둥'이라는 것입니다. 그 주변에는 작고 규칙적인 것들이 모여있습니다. 마치 풀과 곤충들 같습니다. 그래서 '규칙적인 군집'들이 생명력이 보여주는 가운데 '빛의 기둥'이 큰 서사가 되어 중심을 잡는 작품은, 마치 오랜 시간 밀림 속을 헤매다 동화 속 전설로만 내려오던 비밀의 장소에 당도한 순간을 묘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윤경, Hunting I, 2019,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90x150cm


 같은 맥락에서 <Hunting I>도 크게 번쩍이는 서사와, 섬세하며 다양한 생명력이 함께합니다. 화폭을 가로질러 저 먼 곳부터 뛰어들어오는 섬광은 사냥의 오래된 서사를 보여줍니다. 강하게 꺾인 빛줄기는 깔끔하고 강렬합니다. 사냥이 가진 아득한 맥락의 일부입니다. 사냥은 두 역할을 요구하지만, 현재 상황이 '사냥'임을 인지하는 역할은 한쪽뿐입니다. 그래서 '사냥하는 이'의 서사는 오래되고, 날쌔고, 정확하고, 깔끔하고,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냥당하는 이'의 서사는 방금 시작되어 혼비백산합니다. 순식간에 변화된 상황에 온몸의 털이 서고 사방에 공포와 불안이 뻗어나갑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종료된 사건의 맥락은 사냥이 먼 옛날부터 가지고 있었던 길고 긴 서사의 일부가 되며, 빛이 되어 밑으로 흘러 흘러 흘러내립니다.




정윤경, Glass Building III, 2019, Acrylic and oil on unprimed canvas, 190x160cm


 드넓고 기나긴 사건의 시간들이 응결된 거대한 바위산에서 빛이 날아오릅니다. 그 시간의 깊이만큼 날아오른 빛도 너무나 거대하여 온전한 모습은 화폭에 다 담기기도 힘듭니다. 막 날아올라 빛의 근원으로 솟구치려는 시간의 날갯짓 한순간을 담는 데 성공했을 뿐입니다. 유구한 흔적의 틈에서 쌓인 시간은 빛을 피웠고, 만개한 빛이 날아오르자 흔적은 흐려집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하는 빛은 시간의 여담餘談을 흩뿌립니다. 그러나 빛은 미끄러집니다. 어떤 시간도 담지 못하는, 이젠 높디높은 바위산 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기세등등하게 솟아오르는 'Glass Building'의 몸을 타고 빛의 날개에서 떨어진 시간의 여담餘談은 자신의 맥락을 잃습니다. 그리고 결국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반사되며 흐릅니다.


정윤경, Finger Spell IV, 2020,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80x220cm


 우리는 이제 어디서 유구한 빛을 찾아야 할까요. 시간에서 태어나 자신의 근원을 향해 날아오른 빛은 우리를 떠났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혼이 빠진 바위의 흔적들뿐입니다. 이때, 정윤경 작가님은 비록 서사 속에서 쌓인 빛이 그 근원을 찾아 날아 우리를 떠났더라도 우리는 까마득한 서사에서 우리가 남긴 우리만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더듬더듬 우리의 흔적을 가늠합니다. 손과 손가락으로 압도적인 바위산에 담겨있던 빛의 흔적을 따라갑니다. Finger Spell!  빛의 빈자리에 손으로 문자를 채워 다시 칠흑 같던 시간의 흔적에 앎을 채웁니다. 우리의 맥락으로 해명하는 시간은 이제 '역사歷史'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문자로 시간의 흔적을 메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금 빛이 빠져나간 시간은 우리의 언어로 풀어질 넓은 화폭이 되었습니다.




 정윤경작가님의 개인전 FINGER SPELL은 그레파이트 온 핑크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56-600 1층)에서 10월 23일까지 만나실 수 있습니다.



/장소: 그레파이트 온 핑크(Graphite on Pink, GOP) (http://graphiteonpink.com/)

/작가: 정윤경 (http://www.yunkyungjeong.com/)

/사진출처: 홍예지 (https://www.instagram.com/yeji_curation/)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이 예쁜 사람은 물도 좋고 산도 좋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