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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Apr 28. 2024

연구 대상으로써 자신

랄프 왈도 에머슨

Wherever we go,

Wherever we do,

Self is the sole subject.

We study and learn.


우리가 어디를 가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자기 자신만이 오로지 단 하나의 연구 대상이다.

우리는 연구하고 배운다.


-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미국, 1803-1882), 사상가이자 시인 그리고 초월주의자




 '오로지 단 하나 one and only'라는 의미(옥스포드영영사전 출처)의 'Sole'은 에머슨이 가졌던 사상들을 관통합니다. 에머슨의 사상 여정을 설명하는 유니테리언Unitarian(유일신론)과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의 공통점이 바로 문장 복판에 자리한 'Sole'이기 때문입니다. 

 

  에머슨은 7대에 걸친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목사의 길을 걷습니다. 이때 에머슨 집안의 계파가 독특합니다. 기독교의 중심 사상 중 하나는 '삼위일체론'입니다. '성부(하나님), 성자(예수), 성령은 하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은 세 가지 모습이 있으나 그 본질은 하나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에머슨의 집안이 믿고 있던 유니테리언은 이를 거부합니다. 이들은 신의 세 가지 모습을 부정하고 오로지 하나님으로서의 모습과 신격만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로지 단 하나'의 하나님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에머슨은 매우 엄밀하게 신격을 주장한 유니테리언계의 목사집안에서 자랐지만,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시절부터 고모를 통해 영미문학과 자연을 접하며 다양한 분야를 공부합니다. 이런 배경 덕분에(?) 신학부를 졸업한 후 목사가 된 지 3년이 되는 1832년, 그의 자유분방한 사상을 교회가 문제 삼자 에머슨은 목사의 직함을 내려놓습니다. 




 이후 에머슨은 유럽으로 건너가 여러 사상가들을 만납니다. 잉글랜드의 시인 새뮤얼 콜리지와 윌리엄 워즈워스를 만나 '위대하다고 생각한 사람도 평범한 것을 보면, 평범한 사람도 위대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나아가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을 만나 칸트의 관념철학(대상의 진정한 실체인 '물자체'는 인식할 수 없고,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인식의 틀을 통해 현상을 구성하여 객관적인 실체를 인식한다는 태도. 즉,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인식한 세상 = 우리 안에 인식의 틀이 구성한 세상)을 배웁니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에머슨은 뉴잉글랜드에서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정리하여 하나의 사상으로 소개합니다. 이것이 앞서 말한 '초월주의'입니다. 초월주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비롯하여 에머슨의 사상에 동의하는 사상가들의 모임인 '초월주의자 클럽'을 중심으로 19세기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사상으로 자리합니다. 


 초월주의의 특징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지만 부패한 사회나 제도, 종교, 정치 등에 의해 타락할 수 있다.

- 영성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기에, 조직화된 종교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고찰되어야 한다.

- 논리보다 통찰력과 경험이 더 중요하다.

-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존중받아야 하고, 인간이 함부로 변형시켜서는 안 된다.


 이런 초월주의의 특징은 이성을 강조하던 근대 주류 사상계, 제국주의와 노예제도 등으로 인해 만연한 인간성 상실, 기독교 등 제도화된 거대 종교가 개인의 영적 경험 억압하는 구조 등에 대한 반발로 보입니다. 그래서 초월주의는 개인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그 자체로서 온전한 자연을 이야기하고 인간과 자연은 둘이 아니며, 나아가 신성과 분리된 개인은 없다고 강조합니다. 신성과 마주하고, 자연에 참여하여 자기 경험을 오롯이 느끼고 통찰하는 '오로지 단 하나'의 개인을 말입니다.




 문장을 다시 봅시다. 에머슨의 사상 여정에서 Sole의 대상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유럽 여행 전까지 에머슨에게 가장 중요한 '오로지 단 하나'의 대상은 (기독교의) 신이었습니다. 대상은 내 밖에 있었고, 내가 범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Sole의 대상은 자기 자신으로 바뀝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이며 영적 경험을 통해 온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자기를 확인합니다. 에머슨의 Sole이 가장 먼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움직였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도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오롯한 우리 자신이 하는 일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겪는 모든 것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으로 실체를 가지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엇을 행하더라도 그 행위는 우리 안에서 시작되어 우리 안으로 들어옵니다. 행하는 모든 과정이 육체와 인식을 통해 우리에게 인지되어 남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우리는 우리 자신 없이는 인식될 수 없으며, 우리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새삼 저 스스로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에머슨과 유니테리언, 초월주의 그리고 저 문장에 대해 고민하고 쓰는 것 같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제가 이 주제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내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몰입하기 위해 자신을 계속 살펴보고 힘을 쓴다는 점에서 저 자신을 살핍니다(재밌게도 나를 살펴보기 시작하며 주변 환경을 조정하기 시작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첫 단계는 나에게 집중하는 일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마지막에서는 제가 이 문장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고민합니다. 어느 한구석에서도 제가 관여하지 않은 지점은 없습니다.

 

 글의 마무리를 고민하며, 오로지 단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몰이해를 생각합니다. 문장을 들여다보는 짧은 순간만으로도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조금씩 배웁니다. 내가 얼마나 스스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생각합니다.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시선을 외부에만 돌리면 외부 세상에 휘둘리게 됩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인식되고 행위 하는 외부 세계가 내 영향력 밖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가 외부 세계에 휘둘린다는 것은, 휘둘리는 만큼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문장을 곱씹어 볼수록 우리가 가장 잘 알아야 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인 것 같습니다.



 본 연작은 출판사 '어반북스'의 《문장수집가》 프로젝트의 첫 번째 책 <LOVE MYSELF>에서 발췌한 29편의 문장을 기반으로 구성됩니다. 《문장수집가》의 <LOVE MTSELF>에는 '자기 사랑'에 대한 100여 편의 문장이 멋진 캘리그래피로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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