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이 대단해 보여도 나는 내 인생 가기
오늘의 제목: 나는 나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성장하면 된다.
오늘, 어제 새로온 인턴이 사외이사님께 특강을 들었다.
그분 지인 같았는데, 나도 제작사 대표되고 싶은데, 그 친구만 특강이 가는게 부러워서 뒤집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친구의 명함이 프로듀서로 파지는 것에 오늘 눈물이 날 뻔했다. 나에게 '프로듀서'란 정말 내가 10년동안 고등학생때부터 꿈꿔왔던 대상이다. 물론 드라마나 제작사에선 쉽게쉽게 피디라고 붙이지만, 한평생 영화프로듀서가 되고싶어서 온 나에게는 너무 울고싶은 날이었다.
속상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싶을때 남자친구가 퇴근길에 전화를 줬다.
내가 지인은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다른용으로 쓸려고 예전엔 한번 다 지워서) 인스타에 올린 글을 보고, 이미 나의 상태를 알고있었다.
그리곤 맛있는 마라탕을 배달시켜줬다.
우리는 달리는 지하철에서 머라탕 재료를 하나씩 고르고 있었다.
통화너머 들리는 목소리
"목이버섯?"
"좋아!"
"연근?"
"노!"
"매운소스와 마유중에 골라야돼!"
"음.... 그럼 마유!!!"
한바탕 지나가고 나니, 느껴지는 건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온기 였다.
그러고 나니, 내가 가고있는 길이 보였다.
오늘도 나를 한눈 팔게 한 '저 사람의 길'이 아닌, '내가 가고 있는, 나의 시간의 길'.
본인의 단점을 잘 드러내지 않는 누구나 갖는 본성은 동시에 누구나 타인을 부러워하고 부러움받게 만든다.
어쩌면 내가 부러워하는 저 사람도 나의 다른 지점을 보고 나를 부러워 할 수도 있다.
아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네가 내가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길이 있다는 지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각자의 길이 있다.
나는 나의 시간을 타고 간다.
못나보여도 잘나보여도 오만할때도 시궁창 같을때도 나는 나의 시간을 살아간다.
마치 밀려오는 파도에 서퍼가 서핑보드를 타고 가는데, 바다 속에선 본인 것 밖에 못타는 것과 같은 것 같다.
실제 서핑보드도 발이 묶여 연결 돼 있는 것처럼, 내가 지금 이순간의 나로서 못나보여도, 결국 내시간과 나는 한몸이다. 그러면 어쩌겠는가. 동행해야지.
나는 이게 비단 회사에서의 질투에 그치는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내가 아닌 타인이 나를 질투하고 미워할때도 적용된다.
외모가 별로여도, 학벌이, 내 능력이, 내 부모가, 나의 모든 것이 별로여도, 어쩔수 없다. '나'는 받아들이고 나아갈 방법을 찾는 거다.
하지만 만약 누가 나를 헐뜯고, 괴롭힌다면 그건 나의 파도를 잘 탈 권리를 빼앗은 거다. 절대 용납해주지 말자.
'자신'이 태어난 이상, '자신의 시간'이라는 서핑보드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러니, 맘에 안들면 그냥 그 파도에 빠져버리자.
그러다 보면 다시 파도에 올라탈 일이 오겠지. 하지만 누군가가 일부러 나의 서핑보드를 건들인다면? 그건 절대 참아주지 말자. 이건 내 영역이니까.
나는 앞으로 60년이 넘는 시간을 다시 파도에 몸을 맡겨야한다(실은 파도에서 나온 적도 없지만).
오늘 내가 질투를 느낀 그 신입에게 느낀 것은 단 한가지. 내 인생 살자! 못나도 잘나도 내 인생 내 시간이다. 내가 책임질 수 있다면 나는(누구든) 뭐든 할 수 있다. 그러니 당당히 하고 싶었던 일 하면서 나도 그렇게 내가 원하는 성장하면서 살자!
『내가 바라는 내가 되려면 어떻게 성장해야 될지나 생각하자(^^)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