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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수영 Jul 06. 2022

엄마가 되고 엄마를 잃었다.


엄마가 되고 엄마를 잃었다


나는, 겨울이 싫다.

소중한 것들을 뺏어간 겨울이 싫다.

내 결혼식도 추운 겨울이었다. 할아버지는 결혼식장에 오시는 길에 세상을 떠났다.

뱃 속에 처음 생긴 생명을 유산했던 날도 내 마음처럼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그날도, 그날도  매우 추웠던 날이었다.


조리원을 나와서 맞은 주말은 초보 부모로서 곤욕을 치르는 날이다. 이모님이 오시지 않는 날이었기에 우리는 계속 허둥거렸고 진땀을 흘려야 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작고 귀여운 아이의 움직임 하나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신기하고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내가 엄마가 되다니... 벅찬 감정이 수시로 올라왔다.


그렇지만...아이는 밤이면 왜 이렇게 우는 걸까?

“정신 차려!! 부모 되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마치 으름장을 놓는 듯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지만 쉽게 그치지 않았다. 출산하기 전에 그렇게 육아서를 읽었건만 역시 책으로만 배운 육아는 현실육아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저녁쯤엔 완전히 지쳐있었다. 내일이면 이모님이 오시니까 한시름 놓아도 된다. 엄마도 오기로 했는데 사실 며칠 전에 크게 다투었다. 화해를 해야지... 미안하다고 말할 거야... 그러니까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야.


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다. 아버지였다.

“수영아, 동생이 연락되질 않는다. 급한데... 아빠한테 좀 전화 달라고 해라.”

좀처럼 먼저 연락을 주시지 않는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뭔지 모를 불안감 스쳐지나갔다. 동생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동생과 나는 전화를 잘 안받는 편이기도 했고 아버지와 남동생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서 있을 수 있었던 일이었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곧이어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오늘따라 기분이 이상했다. 수십번 전화를 걸었는데 왜 받지 않는 거지?


“아빠, 동생도 연락이 안 되고 엄마도 전화를 안 받아요. 무슨 일이에요?”

몇 차례의 추궁 끝에 아버지는 입을 여셨다.

“엄마가... 엄마가... 바다에 투신한 것 같다.”


순간 울음이 터져 나오며 주저 앉고 말았다. 내가 아이를 안고 있었기에 남편은 더욱 놀라 나를 부축했다.

“자기야... 엄마가 바다에 몸을 던졌데... 근데 내일 엄마 우리 집에 온다고 했는데... 미역국 끓여서 온다고 했어. 나 먹인다고.. 이제는 어떡하지... 엊그제 싸웠는데... 엄마가 너무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사과하려고 했거든... 나 때문은 아니겠지...”


반쯤 넋이 나가서 중얼거리는 나를 남편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달래고 있었다. 지금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막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추운 겨울에 나갈 수가 없었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이기도했다. 이것이 나를 더욱 답답하게 하고 무력함을 느끼게 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더욱 품에 끌어안았다. 남편은 아이를 본인이 안고 있겠다고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치 엄마가 아이도 데려갈 것 같았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있는 내가 너무하다 싶었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좀 전까지 울어대던 아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는 엄마가 낯선 듯 했다.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온전히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나 결혼했기에 희망했다. 이런 행복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와는 다른 화목한 가정에서 자랄 아이를 기대했다. 어려움 끝에 만난 아이였기에 더욱 애틋했다.

“ 여보, 나 뭘 좀 먹어야겠어. 배가 고파졌어."

그만 울어야 겠다고, 담담해지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날 나는 엄마를 잃었지만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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