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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작가 Jul 02. 2023

빵계사 : 빵 만드는 회계사 이야기

1. 시작, 설렘과 무지

  빵, 그것은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신의 선물이자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식사가 될 지 고민을 하며 탄생한 과학의 산물.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빵이 좋았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일 하러 나가시면, 집에 덩그러니 놓여진 식빵을 토스트기에 구워 동생과 나눠 먹고는 했다. 때로는 우유랑 먹기도 하고, 때로는 달콤한 딸기잼을 꺼내어 빵 위에 올려 먹기도 하면서 빵은 어릴적 나와 동생의 맛있는 간식거리였다.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가기 전, 동네에 있던 빵집에서 여러 종류의 빵을 사 먹기도 했는데 식빵과는 또 다른 차원의 맛이라 일요일을 기다리고는 했다. 어린 입맛에게 소세지빵 하나는 아직 교회에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성스러운 맛이었다. 



지금도 갓 구워낸 식빵에 따뜻한 스프, 입가심으로 마실 시원한 우유 한 잔이면                         꽤나 만족스러운 간식거리가 된다.



  그러던 차에 당시 TV에서는 '따끈따끈 베이커리'라는 만화가 방영되었다. 매 방영분 마다 새로운 빵이 등장 했고, 어려서 설명하는 바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만화 속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주인공을 따라 손이 움직이고는 했다. 직접 만들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가 되었고 주인공처럼 내 이름이 새겨진 빵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어린이날이나 생일이면 조그마한 오븐을 사달라 조르기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물론 사주시지 않았다. 아마 두어번 하다 말 것이라 생각하셔서 그랬던 것이겠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빵을 '만들겠다' 라는 생각은 점차 줄어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빵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쉬는 시간이면 맛있는 빵을 선점하기 위해 매점으로 달리고는 했고, 성장기 청소년 답게 많이 먹기도 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성인으로서 사회를 접하기 시작하면서는 때때로 여유가 생기더라도 빵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빵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전공 공부를 하고, 관련해서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는 더더욱 빵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졌다. 중간중간 빵을 좋아하는 친구와 어울릴 때 접하거나, 빠르게 한 끼를 때우기 위해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먹을 때 만이 빵을 먹는 전부였다. 나는 대전지역에서 군 복무를 했었는데, 대전역에는 유명한 '성심O' 이라는 빵집이 있다. SNS상에서 이른바 노잼도시 대전을 소개하면서 필수 코스로 항상 들어가는 바로 그 곳이다. 휴가를 맞이해 집에 갈 때면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런 인파에 휩쓸려 나도 몇 번이고 집에 사들고 간 적이 있다. 처음에야 새로운 맛에 눈이 떠져 맛있게 먹고는 했지만 전역할 즈음에 되어서는 지겨움에 오히려 빵에 대한 반감이 생기기도 했다.



대학생이 된 뒤에는 빠르게 먹기 위한 햄버거나 샌드위치가 주가 되었고, 기본적인 빵 종류 보다도 스콘 같은 비스킷류도 먹고는 했다.




  변화의 바람은 전역 이후에 불어왔다. 평소 부모님께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대형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O'에 다녀오시고는 한다. 워낙 나와 동생이 잘 먹기도 하고, 드라이브 겸 기분전환 삼아서 다녀오시기도 한다. 그리고 그 날은 품목에 변화가 있었다. 바로 '생지' 라고 불리는 냉동된 프렌치롤 이었다. 생지는 반죽을 뜻하는 일본어 生地(키지) 에서 나온 말로서 보통 냉동 유통되는 반죽 상태를 말한다. 처음에는 '생쥐? 센지?' 라고 잘못 말할 정도로 처음 접해 본 단어였고 이걸 어떻게 먹는건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마침 집에 가스 오븐이 있어서 처음으로 사용해보기로 했다. 집에 이사온 지 5년 만에 처음 사용해보는 오븐이었고, 결과는 실패였다. 그동안 사용을 안 했거니와 관리조차 제대로 안 되어 있었고, 가열은 커녕 왠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냄새만 나는 것 같아 사용을 황급히 중지했었다. 



  남은 생지가 냉동실로 향한 그 다음 주, 할인을 한다는 명분 하에 DeLonghi 사의 40L 짜리 컨벡션 오븐을 구매하게 되었다. 사실 이게 좋은 오븐인지는 모르고 빵을 구워먹겠다는 집념에 부모님도 나도 살짝 눈이 뒤집힌 채 내린 결정이었다. 처음에는 온도를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몰라 오븐 앞에서 주구장창 서있기도 했다. 타버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기다렸다. 나중에야 적절한 온도에 시간을 맞춰 어린시절 토스트기에 들어있던 식빵처럼 자유자재였지만, 처음에는 완성된 빵을 데우는 것도 일이었다. 아래 사진처럼 적어도 한 달간은 완전히 본전을 뽑기라도 하듯이 식탁 위에 빵이 가득하게 되었다. 



뜨겁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프렌치롤과 차가운 슬라이스 치즈, 함께한 샐러드는 환상의 궁합이었다.


오븐을 사고 혼자서 구웠을 때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어릴적부터 꿈꿔온 오븐을 사용하여 빵을 만들어낸 첫 순간이라 굉장히 감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빵 만들기를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 준비하던 공인회계사 시험을 치뤄야 했기에 다른 데 정신이 갈 시간이 없었다. 


  한국 공인회계사 시험은 1차, 2차 시험으로 나뉘게 된다. 1차 시험은 크게 5과목을 10:00 ~ 18:00 동안 치르게된다. 크게라고 말한 건 말 그대로 시험시간 과목에 따라 경영학, 경제학, 상법, 세법, 회계학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나누자면 19개의 분야로 분류될 수 있겠다. 보통 2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시험이 진행되고 객관식 5지선다형이라 시험이 종료됨과 동시에 답안지가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되기 때문에 비교적 합격 여부를 비교적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나는 2022년도 제 57회 시험에서 불합격 이후 다음 해인 2023년도 제 58회 시험에서 합격하였다. 


  1차 시험을 합격한 인원은 이후 6월 마지막 주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에 걸쳐 총 5과목을 치르게 된다. 1차 시험에서 다룬 세법, 재무관리(1차 시험 경영학에 포함), 원가회계(1차 시험 회계학에 포함), 재무회계(1차 시험 회계학에 포함)가 4과목이고 2차 시험에서만 존재하는 회계감사 과목까지 포함하여 총 5과목을 각각 10:00 ~ 18:10 / 10:00 ~ 16:00 동안 치른다. 주관식 논술형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결과를 알기까지 2달 정도가 소요된다. 일부 독자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으나 이 책은 회계사가 되기 위한 나의 이야기가 아닌, 회계사가 된 이후의 나의 제빵 이야기이므로 시험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겠다. 


  내가 위의 시험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무엇이냐면 바로 2차 시험 이후 2달 간의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무려 2달간의 자유시간. 2차 시험을 치르고 난 나는 최대한 답을 썼다고 생각해 기대감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많이 들었다. 1차 시험과 다르게 처음으로 치른 시험이었고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게 출제되어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 감히 예측이 안 되었다. 막상 기다려온 자유시간임에도 마음 한 편으로는 찝찝함이 들고, 하루 이틀 놀아도 제대로 논 것 같이 않은 기분이 들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동기들이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니 조급함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 날도 그랬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한 때는 금융감독원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키웠으면서 지금껏 여의도라는 동네에 가본 적은 없었다.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지이자 국책은행이 즐비한 바로 그 여의도. 그래서 시험이 끝나고 할 일을 세워보면서 우선 여의도에 가보자고 다짐했었다. 괜히 아르바이트 자리나 기웃거리지 말고 쉴 때는 확실히 쉬자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지하철을 타고 출발하면서 학교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된 선배 회계사 분께 연락을 드렸다. 작년에 1차 시험을 불합격하고 오랜만에 하는 연락이었다. 그 전에는 강남에서 근무하고 계셨기에 사실 별 기대는 없었다. 다음에 강남 갈 때 한 번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여의도 올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셨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래서 제대로 꾸미지도, 갖춰입지도 못한 상태. 하지만 그럼에도 기회라고 생각했다. 계획한 일정을 나름대로 마무리하고 근무하고 계신 곳에 찾아갔다. 높은 빌딩에 압도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도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는건가 하며 가슴이 뛰기도 했다. 


  음료수를 마시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동료들 중에 시간이 남아도 할 일이 없어서 보내는 분들도 있는 반면에 오히려 취미생활을 위해 살아가는 분들도 계시다고. 또 그게 한편으로는 기회가 되어 다른 길을 걸어가는 분들도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그러니 시간여유가 될 때 그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하기 힘들었던 것을 하나씩 해보라고 조언해주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곰곰히 생각했다. '공부를 하기 전 꾸준히 해오던 웨이트 트레이닝, 앞으로도 계속 할 생각이니 패스.' '여행? 좋긴한데 여름이라 너무 더우니 차근차근 다니는거로 패스.' 눈동자는 좌우로 왔다갔다 하며 다른 사람들을 쳐다봤고 그러던 중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의 손에 들린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빵 봉투네. 무슨 빵이 들어있을까? 맛있겠다.' 그 순간 문득 떠올랐다. '빵? 빵을 만들어볼까? 어차피 시간도 있고, 돈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밀가루랑 조금씩 살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래 빵을 만들어보자. 이번에는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득하던 불안감은 금새 사라졌고 머리 속에는 온통 아침에 갓 구운 빵을 먹는 상상으로 차오르게 되었다. 


  집에 들어온 나는 가족들에게 외치듯이 말했다. "나 빵 만들어볼거야" 물론 비웃음치는 동생과 빵 만들기 키트를 판다는 어머니의 말을 뒤로한채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빵 만들기 레시피를 찾게 되었다. 사진과 설명, 혹은 동영상으로 되어 정말 초보자도 익히기 쉽게 컨텐츠가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나는 빵 만들기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가 않았다는 것을. '밀가루 몇 그램에 이스트 몇 그램, 아하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 근데 이스트랑 베이킹파우더가 다른게 뭐지? 5 그램만 넣으라는데 그건 어떻게 재는거야? 재료는 다 냉장고에 넣으면 되는건가?' 머리 속에서는 이미 반죽을 치대고 있고 노릇노릇 향이 나는 빵을 준비하는 내 모습이 가득한데 현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얼마나 재료의 용량이 중요한지, 그리고 도대체 빵이라는게 뭔지. 좋게 말하면 빵에 대해서 진심으로 다가갔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융통성이 없다고 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일일 베이킹클래스에 다녀보고, 계속 흥미가 생기면 영상을 보면서 시도도 해보고, 그렇게 만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너무나도 이 분야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고 접근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영상을 보며 온라인으로 재료와 도구를 구매하려던 나는 서점 사이트에 들어갔고 그 중에 한 권을 바로 구매하였다. '당장 재료를 투입해서 날려먹는 것보다는 이번주 만이라도 공부를 조금 하고 시작하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힘들기는 해도 흥미롭다.


  다음 날 도서관에 가서 관련된 책을 몇 권 빌려왔다. 밀가루의 종류를 보며 각기 다른 사용처에 놀라기도 했고 막상 책을 보다보니 흥미가 생겼다. 곧바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박력분과 중력분, 강력분의 차이에 대해서 말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재미있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전문적으로 배울 만큼 여유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 만들어가다보면 분명 나만의 멋진 취미가 되리라 생각했다. 혹시 알아? 나중에 정말 내 이름이 들어간 빵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줄 그 날이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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