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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minous May 27. 2020

단기 전업 아빠 분투기 1

아기가 집에 왔다 - 1

정말 이제부터 시작이다


산후 조리원에서의 3주가 지나고 온 가족이 집에 다시 돌아왔다. 우리 아기는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집에 들어온 셈이다. 육아는 장비빨이라고 이야기를 누누이 들어서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미리미리 준비를 열심히 한 덕분에 이미 우리 집에 원래부터 함께 있었던 것처럼 아기 용품들과 아기가 있는 장소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아기는 사랑스러워 죽을 것 같으며 내 아내는 너무 자랑스럽고 우리를 아껴주는 양가 부모님이 보내주신 선물 덕에 냉장고는 든든하다. 마음이 이보다 더 풍족할 수 있을까? 행복함에는 대가가 있다. 내 일상은 아내가 임산부일 때와 다르게 송두리째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첫날부터 든다.


당장은 두 가지 포인트가 달라질 것 같다.

-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예상된다

- 강박적인 기록과의 싸움이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예상된다

우선 지금은 새벽 두 시 오분이다. 한 시간 반전에 90ml 수유를 하였으니 세시반에 다시 90ml를 수유해야 할 것 같다. 아기를 트림시키는 데는 꼬박 30분이 걸렸고, 30분간 자다 일어나 칭얼칭얼 잠투정을 하여 기저귀를 갈고, 공갈젖꼭지로 재우는데 30분이 걸렸다.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일어날 것 같은 숨소리가 들린다. 이 막연한 느낌이 확신으로 바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기에 조심스럽지만 아마 오늘 밤 나는 잠을 자기 힘들 것 같다.

산후 조리원에서부터 예상은 되었다. 우리 아기는 유달리 빨기 욕구가 심했던 것 같았다. 배고플 때, 불편할 때, 졸릴 때, 그리고 빨고 싶을 때마다 아기는 울음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이 아기를 돌보는 곳이 산후조리원임에도 불구하고 케어해주시는 이모님들이 아내를 세 시간에 한 번꼴로 호출하였다.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니 조금이라도 직유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렇게 바로 옆에서 1주간, 그리고 왔다 갔다 하며 2주간, 도합 3주를 지켜보니 아무래도 밤에 아내를 재우고 내가 아기를 돌보려면 공갈젖꼭지는 필수품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딱 맞아떨어져서 아기를 30분이나마 재울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가.


강박적인 기록과의 싸움이다

산후조리원 케어실에는 최대 16명의 신생아와 4분의 이모님이 계셨으니 전문가 1인당 4인의 아기를 케어해주시는 거였으며 4 교대였으니 6시간 동안 담당을 했던 셈이다. 모든 아기가 다 차는 경우는 없었다. 여기서 단술 산수를 해보자. 아기 한 명에 필요한 집중도를 [시간(하루 기준) x 인원(신생아 수)]/케어 인력으로 생각한다면 산후조리원은 (0.25x16)/4 니 총 1이라고 할 수 있다. 집에 온 나와 아내는 1x1/2니 총 0.5여서 더 할만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으나 그건 단 산수의 함정이다. 그들은 전문가이고 시스템과 경험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나와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다. 집에 와서 아기가 첫울음을 터뜨릴 때 느꼈다. 이제부터 언제라도 병원에 갈 수 있으니 기록으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아무 대비가 안 되겠구나.


산후조리원에서는 케어해주시는 이모님들이 언제 잠이 들었고, 얼마만큼 먹었고, 얼마나 자주 먹었는지, 배설 텀은 어찌 되는지에 대한 기록을 매 순간 해주었으며 수시로 체온을 재고 매일 체중을 체크해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부부가 공유할 수 있는 육아 어플도 동일한 기능을 하는 것이 있어서 사용을 시작했는데 그 순간부터 시간과 용량에 대한 집착이 생겼다. 강박적으로 기록을 그때그때 해주지 않으면 어림짐작으로 뒤늦게 부정확하게 채워지는 하루의 기록이 아기의 상태를 왜곡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똥도 사진 촬영으로 기록을 남겨둔 이 순간 앞으로 이런 일상이 아기가 클 때까지 계속 반복될 거라는 미래가 빤히 보였다. 그런 와중에 숫자만이 아닌 활자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좋겠다 싶어 브런치도 시작했으니 점입가경이 아닐까.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아내는 지금 옆에서 코를 골며 곤히 자고 있다. 우리 아기 본다고 둘 다 같이 깨어있지 말자, 제발 한 명이라도 휴식 시간을 온전히 가지자라고 아내를 설득하고 재우길 참 잘했다 싶다. 시간을 보니 아직 유축해둔 모유를 중탕하기에는 30분 정도 여유가 있다. 아기는 잘 자고 있고 이 밤은 지나가고 있다. 오늘은 산모도우미가 온다. 어제와 달리 지원군이 온다는 사실에 약간 마음이 놓인다. 오늘 아홉 시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아주 조심스럽게 해 본다. 5시간 15분이 남았다.


내일은 어떤 포인트를 느끼려나. 오늘 이 밤은 제법 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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