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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Aug 11. 2020

열쇠와의 분리 불안

낯선 곳에 산다는 것

스위스에는 한국에 비해 뒤쳐져 있는 것이 오조 오억 개는 될 것이다. 그중에서 적응이 가장 쉽지 않았던 것은 바로 열쇠였다.


한국에서 열쇠를 마지막으로 써본 게 언제일까? '열쇠'라는 단어가 여전히 일상에서 사용되긴 하는 걸까? '~로 향하는 열쇠'라고 할 때의 비유적 의미 말고. 내겐 엄마가 관리실에 맡겨 놓거나, 우유통에 숨겨 놓던 어린 시절 이후로 삶에서 사라진 단어였다. 그러다 프랑스에서 다시 열쇠를 사용했고, 몇 년이 흘러 오게 된 이웃나라 스위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높은 천장에 반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서를 낸 아파트는 1903년에 지어졌다. 백 살이 넘은 건물에 입주하는 날, 부동산에서는 열쇠 봉투를 내밀었다. 묵직한 봉투 안에는 현관 열쇠, 지하실, 우편함, 세탁실, 건물 출입문 열쇠가 각각 세 개씩 들어 있었다. 만능키 같은 건 없었다. '정말 같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건가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부동산 아저씨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어쨌거나 이 열쇠 꾸러미를 늘 지니고 다녀야 한단 사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설상가상으로 건물의 오래된 문은 한 번 닫히면 바로 잠겨버렸다. 이에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던 나는 두 번이나 바보짓을 하게 된다.


처음은 가구가 오는 날이었다. 택배가 정확히 언제 도착한다는 알림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같은 건... 당연히 없다. 주문할 때 받을 날짜와 시간대를 정할 수 있는데, 그마저도 시간대가 굉장히 넓다. 가령 14~16시 방문을 선택하면, 그 시간 동안 집에서 꼼짝 않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혼자 사는 직장인으로서 굉장히 난감한 일이다. 여차저차 사무실에서 나와, 물건이 빨리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건물 아래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필이면 그때 초인종이 고장 났던 것이다. 건물 출입문을 열어주기 위해 뛰쳐나갔다. 문을 열어줘야겠단 생각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기사님을 모시고 집으로 올라왔는데, 이럴 수가! 눈 앞엔 굳게 닫힌 문이 보였고, 난 빈 손이었다.

도난이 잦은 제네바에서는 택배를 그냥 집 앞에 두는 법이 없다. 그렇지만 무거운 매트리스며 조립도 안된 서랍을 들고 갈 사람은 없겠다 싶어, 몇 시간은 그냥 두기로 했다. 그리고는 터덜터덜 사무실로 걸어갔다. (다행히 사무실에 비상 열쇠를 뒀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낑낑 거리며 짐을 안으로 들이며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노라고.


입장을 기다리는 가구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아니면 나란 동물이 어리석어 같은 실수만을 반복하는 것일까? 두 번째 바보짓을 한 건 냉장고 설치 기사님께서 오시는 날이었다. 트럭 소리를 듣고 문을 미리 열어 두기 위해 버선발로 마중 나갔다.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속한 문이 바람에 닫혀버린 것이었다. 대문과 나만 세상에 덩그러니 남은 기분이었다. 열쇠며 폰, 지갑 등 모든 소지품이 집 안에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친절하신 기사님께서는 일단 냉장고를 문 앞에 두고, 설치를 위해 한 시간 뒤에 다시 오기로 해주셨다. 비상 열쇠를 가지러 가기 위해서 재빨리 사무실로 향했다. 망할 놈의 열쇠 꾸러미라고 욕을 내뱉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이 모든 난리는 조심성 없는 내 탓이며, 이 불편은 다른 나라에 살기를 택했기에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것을.



입장을 기다리는 냉장고



두 번의 사고 이후 항상 열쇠는 가방에 고이 모셔둔다. 집을 나서기 전 열쇠가 잘 들어있는지 여러 번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 열쇠와의 분리불안을 겪고 있달까?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열쇠 꾸러미를 떠나보내고 싶지만,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적어도 더는 바보짓을 하지 않아서 뿌듯하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라도 굳이 해외에 사는 이유를 생각해볼 때가 있다. 장점과 단점을 표로 만들어 저울질해봐야 할 때도 된 것 같다. 하지만 셈에 능통하지 못한 나는 '이 정도면 여기도 좋지' 하고 계속 살아보는 것으로 황급히 결론을 내려버린다. 아마도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당장의 안락함보다는, 다채로운 경험이기 때문일 수 있겠다.


낯선 곳에 산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불어에는 'sortir de sa zone de confort'라는 표현이 있다. '안전지대(comfort zone)에서 벗어나다'라는 말이다. 익숙함의 저주에서 벗어나야만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고들 한다. 스위스에 살면서 이 표현 그대로 일상의 모든 안락함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렇다고 신세계가 펼쳐졌냐 하면 그것은 모르겠다. 해외 생활은 늘 반짝이지만은 않고, 오히려 고생길에 가깝다. 또 어디나 그렇듯 멋진 사람만큼이나 고약한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래도 배운 것이 있다. 우선 느린 속도에 조바심 내지 않고 느긋하게 버틸 수 있는 끈기를 얻었다. 또한 쉽게 도움을 청할 곳이 없기에, 애초에 실수를 차단하는 조심성을 길렀다. 길을 표시하려고 빵가루를 흘리던 헨젤과 그레텔처럼 가는 곳마다 물건을 줄줄 흘리고 다녔는데, 정말 많이 고쳐졌다. 아니, 고쳐야 했다. 그리고 떠나온 나라에 감사하게 됐다. 내 나라가 익숙해서가 아니라, 한국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굴러가는 곳인지를, 각종 서비스가 얼마나 소비자 친화적으로 편리하게 조직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러한 체계를 구축한 똑똑하고 빠릿빠릿한 사람들에게 무한한 존경도 품게 되었다.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일은 무조건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내가 가졌던 것을 거리를 두고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삶의 중요한 가치가 달라진다면, 삶의 터전도 옮길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낯섦에서 오는 불편함과 함께 분명히 새로운 가르침이 따라올 것임을 알기에.   









이 글을 빌어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세 달이 되지 않아 100명이 넘는 분께서 구독해주셨습니다. 수천 명의 독자를 두신 작가님께는 아마 소박한 숫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 글의 쓸모와 깊이에 대해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어머어마한 숫자입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 당시 마음을 관통하던 우울과 외로움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서였습니다. 삶에 자신감을 갖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꾸준히 정성을 기울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지요. 특별한 재능도 취미도 없는 사람이 컴퓨터 한 대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담당 교수조차 관심 없는 논문이나, 쓰는 본인만 웃겨서 키득대는 일기처럼 되어버려도 상관없었습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결과물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오늘날 독자보다 작가가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영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제 경우 인터넷에서 접하는 글은 한 문단도 꼼꼼히 읽어내기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스크롤을 주르륵 내리며 허투루 대하기 일쑤였죠. 다른 감각을 빠르게 자극하는 콘텐츠가 넘쳐나니깐요. 반면 작가라는 업의 접근성은 그 어느 때보다 낮아진 때입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누구나 손쉽게 글을 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놀랍게도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브런치가 추천하고 다음 메인에까지 올라 조회 수가 수만에 달한 글도 있었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남겨주신 댓글이었습니다. 다른 소셜 미디어에 비해 상호 작용이 적은 이 공간에서 댓글은 더욱 귀중한 것임을 압니다. 그 한 문장 한 문장에는 어딘가 부서져있던 저를 치유해주는 커다란 힘이 있었습니다.


완벽한 타인의 잡다한 이야기를 읽어낸다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기꺼이 해내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가볍고 즐겁게, 가끔은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지만,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과한 인사가 되기 전에 이만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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